브런치북 26 시작 10화

36살 니기미지기미-1

나의 가장 큰 하늘이었던 그대

by 쏜맹

코로나도 격리도 몇 명 이상 모임 금지도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다. 2021년이었다.


설날이 있었기에 언니네 가족과 일정을 달리 정해서 친정에 들렀다. 엄마 아빠 두 분만 계시는 집으로..

우리가 그러니까 언니가 고등학생이 될 때부터 삼 남매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고 엄마아빠만 본가에 남아계셨다.

그렇게 나도 고등학교 내내 자취와 독서실 그리고 친구네 집에서 같이 살기를 하면서 밖에 나와 살았다. 대학생이 되었을 땐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 생활이 끝났을 땐 언니와 대구에서 같이 자취를 했고, 그리곤 남편과 결혼을 했다.


지나고 보니 엄마아빠와 함께 산 세월이 참 짧았다 싶다.


우리 아빠는 술을 참 좋아하셨다. (술 좋아하는 유전자가 나에게도 왔다.) 술에 취해오는 날은 어김없이 (3번에 2번꼴로) 엄마랑 싸웠는데 이상하게도 아빠가 미운적이 없었다. 다음날이 되면 술에 취했던 본인을 스스로 부끄러워했고 엄마한테 꼼짝도 못 했다. 사실 평소에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아빠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이었고, 그게 아빠를 미워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전형적인 아빠들처럼 우리 아빠도 술에 취하면 가끔 간식을 사 왔다. 그러고는 집안에 들어오면서 우리 삼 남매를 크게 불렀다. (사실 언니 이름만 불렀던 듯도 하고..) 어떤 날은 아빠를 반갑게 맞이하고 어떤 날은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아빠 미안)


자는 척을 하는 우리에게 수염 가득한 볼을 비비며 "이노~~ 무 새끼들"이라는 애정의 표현을 해주시곤 했다. 참 싫으면서도 한편으론 이 사람 나 좋아하네가 느껴지는 말투와 행동.


우리 아빠는 술을 안 마셨을 땐 관식이었고 술을 마시면 학씨가 되었다. 나중에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는 술을 마셔도 관식이었다.(멀리 살던 나에겐..)


그날은 회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조금 무서워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상사 욕을 했나.. 일이 힘들다고 얘기를 했나.. 아빠랑 술을 한잔하고 싶다 얘기를 하고 꺌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통화 마지막에 "아빠가 사랑한다 우리 둘째 딸"이라고 말해줬다. 그땐 거의 통화의 마지막은 항상 사랑한다로 끝이 났기 때문에 그리 임팩트 있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달빛과 아빠의 통화 목소리와 주변의 소음등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아빠는 평소 '니기미지기미'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정확한 뜻은 모르나 '이런 젠장' 정도로 이해했다. 특히나 일이 없는 아침에 (농촌은 정말 일이 없는 시즌이 있다. 엄마 본인도 할 일이 없다.) 엄마의 "남자는 나가야 해"라는 남녀불평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주 '니기미지기미'를 썼다. 또,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이거 끝나면 저거 해"라고 하면 어김없이 '니기미지미기'를 썼다.


동갑내기 부부는 그렇게 엄마가 항상 우위를 선점했고 아빠는 '니기미지기미'를 입에 달고 살았다.

(사이가 안 좋으면서 좋은 신기한 부부였다.)


우리 집에선 아빠가 엄마보다 요리를 잘했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특히 김치찌개와 돼지고추장불고기를 참 잘했다. 결혼을 하고 대전에서 아빠가 해주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데 그 맛을 내기가 어려워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레시피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빠는 요리 잘하는 사람들처럼 '대충'을 얘기했고 요리 초보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 맛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본가에 가는 날이면 아빠한테 김치찌개를 끓여달라고 했었다.


2021년 설날에 만난 엄마 아빠는 좋아 보였다. 그 해 남편이 인센티브를 많이 받아서 랍스터와 대게를 사갔다. 술 좋아하는 아빠와 소주 한잔 먹으면서 대게와 랍스터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 아빠는 짬뽕보다는 짜장면을 더 좋아했는데, 내가 먹어보고 맛있었던 짜장면 밀키트를 사가서 대게와 랍스터를 먹고 2시간 정도 지나서 짜장면도 하나 끓여줬는데 그것도 맛있다며 뚝딱 먹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고 나도 드디어 나의 부모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많이 늙어있었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챙기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아빠가 소화가 잘 안돼서 밥을 잘 먹지 못했다고 엄마가 얘기했었는데 곧잘 먹는 아빠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랬었는데... 2주 후


아빠가 혼자 밭에서 죽었다. 니기미지기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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