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구조를 감정으로 착용한다는 것
브레이슬릿 하나를 찼을 뿐인데,
그 순간 왜 『유리알 유희』가 떠올랐는지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건 단순히 반짝이는 표면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짝임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러브 파베 브레이슬릿, 그중에서도 화이트골드 모델은 묘하게도 반짝이는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빛은 있지만, 음성은 없다.
차갑지 않은데도 거리감이 있고,
가까운 듯하지만 완전히 손에 닿지 않는다.
나는 그 조용한 감정을
브레이슬릿의 질서라고 부르기로 했다.
『유리알 유희』를 처음 읽었던 건 아주 오래 전이었다.
그 안에서 유희란 곧 언어, 음악, 수학, 철학 등 모든 지적 구조가 투명한 구슬 하나로 연결되는 신비로운 의식이자 상징이었다.
감정은 없다.
하지만 감정보다 더 깊은 정신의 질서와 서사가 있었다.
러브 파베를 착용했을 때의 인상도 그랬다.
다이아몬드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하나하나가 소리치지 않았다.
모두가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같은 깊이로, 같은 조도로 박혀 있었다.
“이건 빛이 아니라 구조다”
그 순간 그렇게 느꼈다.
많은 주얼리는 감정을 꺼내놓기 위해 존재한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 선택되었다는 기쁨, 혹은 나를 드러내고 싶은 어떤 욕망.
하지만 까르띠에 러브 파베 브레이슬릿은 조금은 다르다.
특히 화이트골드 스몰 파베는, 그 어떤 감정도 겉으로 꺼내놓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사랑,
혹은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건 나에게 유리알 유희 그 자체였다.
‘기억의 맥락 속에서만 완성되는 투명한 구조.’
그 정서적 이미지는 단순한 반짝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러브 파베는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인상에 남으면 오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구조의 주얼리는 드물다.
말하자면 이건 시간을 거스르는 구조이고,
감정 대신 여운을 남기는 주얼리다.
한동안 나는, 왜 이 브레이슬릿이 그토록 내 손목 위에서 자연스러웠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내가 원했던 것이 ‘보석’이 아니라 침묵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러브 파베를 착용한 그날,
나는 유리알 유희 속 캐스트라 왕국을 떠올렸다.
고요한 이성과 정제된 영혼,
모든 것을 아는 듯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세계.
그리고 나도, 그런 구조 안에서 감정을 입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