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너와 나의 이야기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MBTI부터 애니어그램, 관상학.. 심지어 타로 카드까지 뒤적이며 ‘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 모양일까?’ 자문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얼굴 뜯어보기는 의외로 꽤 재밌었지만.) 하지만 그 모든 테스트보다 내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친 건, 상담 수련 중 만난 내 안의 ‘자아상’이었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가 서 있었다. 엄청난 능력, 거대한 몸집. 딱 봐도 알라딘의 램프에서 갓 튀어나온 ‘지니’였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지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
“넌 왜 그렇게 슬퍼? 뭐든 할 수 있잖아.”
“내 능력? 이건 날 위한 게 아니야. 난 나를 위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군가의 명령이 있어야만 해.”
그 말을 듣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속으로 소리쳤다. ‘야, 이런 바보 같은 놈이 있나! 그렇게 똑 부러지는 능력이 있으면서 뭣이 어째?’ 아마 스승님이 옆에 안 계셨다면, 실시간으로 험한 말이 터져 나왔을 거다.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보다 먼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의 마음 들어주느라 제 마음 한번 들여다볼 줄 몰랐던 그 슬픈 지니가… 바로 나였으니까.
돌이켜보면 내 삶은 딱 지니의 그것이었다. 타인의 필요에는 번개처럼 달려가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정작 내 욕망 앞에서는 늘 작아졌다.
'나 하나 참으면 모두가 편해', '괜히 유난 떨 필요 없어'라고 읊조리며 나를 위한 소원 빌기를 스스로 금지해 왔다. 그렇게 똑 부러지는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나를 위해서는 바보처럼 구는 것.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상담 공부에서의 깨달음이 현실의 변화로 곧장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 알지 않는가. 현실은 달팽이 걸음이란 걸. 내 안의 지니를 만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아이의 필요에만 동동거렸고, 세상의 요구에 허덕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만능 지니’가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에너지가 방전된 저녁, 사소한 일로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방문이 쾅 닫혔지만, 문틈으로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새어 나왔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이의 작은 등을 떠올리는데, 그 위로 내 안의 ‘슬픈 지니’ 얼굴이 겹쳐 보였다.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차. 이러다 내 안의 슬픈 지니를 아이에게까지 물려주겠구나.’
다른 건 몰라도, 내 아이만큼은 자신을 위해 당당히 소원을 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먼저 나부터, 내 안의 지니부터 챙겨야 했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달래고 미안하다 사과를 건넨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지니에게 ‘주인’으로서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좋아하는 캔들을 켜고, 음악을 틀고, 창가에 앉아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세상과 나를 분리하듯 핸드폰도 꺼버렸다. 이것이 내가 나의 지니와 맺은 첫 번째 계약이자, 그에게 건넨 다정한 약속이었다.
그러고 보면 다들 마음속에 똑 부러지는 지니 하나씩은 품고 사는 것 같다. 다만 그 주인이 내가 아닐 때가 많을 뿐. 부디, 우리 안의 모든 지니들이 오늘 밤은 좋은 주인을 만나 편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