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키장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
- 지난겨울이야기 -
부산에서 부드러운 눈에 스키를 타려면
차로 6시간은 달려 강원도 스키장까지 가야 합니다.
부산은 눈도 잘 오지 않아서
제인이는 눈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스키장은 구경도 못 해봤죠.
그나마 경남 김해에 가야랜드 눈썰매장 두어 번 간 게 전부예요.
그러던 부산 촌아이가 출세했습니다.
동계올림픽도 열렸던
겨울 스포츠 강대국, 캐나다에서
진짜 눈 위에서 진짜 스키 강습을 받게 되었으니까요.
집에서 30분만 나가면
만년설산과 빙하수가 흐르는 대자연이 펼쳐집니다.
눈 덮인 산이 흔해 빠졌어요.
보송보송한 눈.
40년 넘게 산 저도 이런 눈은 처음 만져봤습니다.
이 정도면 손에 닿는 에비앙 아닌가요?
영상 4-5도 기온의 산 아래에서
차로 10분만 올라가면
그 길이 그대로 ‘겨울왕국’이에요.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고,
풍경은 마치 울라프가 반겨줄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제인이는 그곳에서
이번 겨울 시즌 내내 주말마다 스키 강습을 받기로 했습니다.
강사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온 사람들입니다. 명찰에는 자신의 출신지역과 이름이 적혀있어요. 첫 강사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온 귀여운 백인선생님이었어요.
처음부터 스키 동작만 간단히 알려주고, 바로 눈 위로 보내더라고요.
굴러도 보고, 엉덩방아 찧어도 보고,
그냥 눈과 먼저 친해지라는 방식이었어요.
그날 강습을 마친 아이는 고글 안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채 돌아왔어요.
눈은 퉁퉁 붓고, 콧물까지 줄줄.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제인아, 울었어? 왜?”
“엄마는 왜 무서운 거 타라고 했어?
엄마도 없고, 선생님은 계속 내려오라고 하고… 으앙~~.”
스키장도 처음이고,
스키 신발도 낯설고,
난생처음 보는 가파른 눈길을
혼자 내려오라 하니 겁이 날 수밖에요.
찬 바람 부는 설산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고 돌아온 아이를 보며
어미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사실… 우리 부산 사람들은 스키 배우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배워갔으면 했어요. 저도 아직 스키를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부터 싸 들고 온 비장의 무기를 꺼냈습니다.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 간식, 그리고 사발면.
스키장 레스토랑에서
김 모락모락 나는 라면 국물을 호록 호록 마시는데…
이건 뭐,
사발면에도 품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스키장 레스토랑에 외부음식이 반입 가능했습니다. ^^)
사발면 한 그릇으로
스키 첫날의 눈물과 추위를 다 녹여버렸고,
제인이는 한 시즌 만에 레벨 3까지 마스터해 버렸습니다. (총 4 레벨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제인이는 매주 스키장에 갑니다.
컵라면 먹으러 갑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더니,
뭐든 가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죠.
제인아,
처음 보는 눈밭 위에서
두려움 꾹 참고 끝까지 해낸 너라는 걸
잊지 마.
이런 순간들을 하나하나 지나면서
넌 앞으로 더 재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의 열쇠를 하나씩,
소중히 쥐고 가는 거야.
그 열쇠는 언젠가,
두려움이 다시 찾아올 때
네 마음을 열어줄 거야.
그때도 해냈으니까,
지금도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