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이야기
6월 26일 종업식을 마친 뒤, 9월 2일 새 학년 개학일까지 캐나다의 여름방학은 무려 두 달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이 긴 방학은 아이들에게는 설레는 시간이지만, 부모는 아이들만큼 설레지 않지요.
다행히 벤쿠버의 여름은 아이들을 집에만 둘 수 없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 집 근처만 나가도 숲과 호수가 맞이해 주는 자연환경 덕분에 하루하루가 여행 같았습니다. 주말마다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는 축제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특히 여름방학 동안 인근 대학과 레크리에이션 센터, 사설 기관에서는 일주일 단위의 다양한 캠프를 운영합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며 아웃도어, 과학, 아트, 축구, 체육, 댄스까지 다양한 주제로 진행됩니다. 인기 있는 캠프는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도 합니다. 모든 게 느린 캐나다에서도, 이때만큼은 부모의 손이 빨라집니다.
제인이가 방학 마지막주에 참여한 여름 캠프는 바로 댄스 캠프였습니다. 대기자가 50명이 넘을 만큼 인기가 많았지만, K- mom의 빠른 클릭으로 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발레, 재즈댄스, 혹은 원주민 전통무용이 주를 이루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날 캠프가 끝난 후 제인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엄마, 오늘 Golden 배웠어. 금요일에 공연하니까 그날 공연 보러 와야 해.”
설마 그 K-POP 데몬 헌터스의 Golden????
지금 캐나다까지 와서 백인선생님들한테 K-POP을 배운다고????
이미 북미를 강타한 K-POP 데몬 헌터스는 벤쿠버에서도 아이들의 ‘최애’가 되어 있었습니다.
댄스 캠프에서는 발레, 아크로바틱, 재즈댄스와 함께 K-POP이 당당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첫날 캠프 중 선생님은 Golden의 가사를 나눠주며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학생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 한 명이
“Jane can read that!!”
그리고 제인이는 큰 소리로 가사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순간, 모든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었다고 합니다.
다음날 캠프에 제인이를 데려다주러 가니 선생님께서는
“어제 제인이가 Golden 가사를 읽어줬다”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제인이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고,
제인이는 “한국인이라서 너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공연 발표를 앞두고 아이들은 여러 곡에 맞춰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자유 댄스 시간에는 팀별로 안무를 직접 짜야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끄러워 머뭇거렸지만,
제인이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습니다.
“I can do this.”
“I got this, I’ll do it!”
제인이는 무대의 중심에 서서 자신 있게 춤을 추었고, 모두가 제인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엄마인 저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습니다.
잘했다! 잘했다! 정말 잘했다! 우리 딸!!
Golden은 아이들 전체가 참여하는 마지막 무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동작과 함께 모든 가사를 떼창 하였습니다. 물론 한국어 가사까지 훌륭하게 불렀습니다.
K-pop의 세계적인 인기와 제인이의 활발한 성격이 만나면서, 캠프는 어느새 제인이의 무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언니와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졌습니다. 마지막날 공연이 끝나고 언니들과 연락처를 교환하는 모습에 일주일 만남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작년에는 로제의 A.P.T가 캐나다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더니, 올해는 K-POP 데몬 헌터스가 북미 전역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것입니다.
저는 사실 브리트니 스피어스, NSYNC 세대입니다. 미국 팝 음악이 익숙한 세대이지요.
그래서 처음 데몬 헌터스를 접했을 때, 혹부리 영감 속도깨비가 등장하고 저승사자 이야기를 변주한 ‘사자 보이즈’가 무대 위에 나타나며, 한국 전통 문양과 특징이 퍼포먼스 곳곳에 등장하는 모습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곡이 시작되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노래 자체는 압도적으로 훌륭했고, 퍼포먼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 문화가 이렇게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깊은 자부심이 차올랐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웃인 Varun과 Vidya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집의 Varun 아저씨는 인도 출신으로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효과 디자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Varun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어요.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예요.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힘을 내는지 늘 놀라워요. 저는 손흥민 선수를 좋아합니다. “
그러자 Vidhya가 덧붙였어요.
“블랙핑크 같은 K-pop 그룹은 전 세계를 뒤흔들잖아요. K-drama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세계를 사로잡는 문화와 인물을 만들어낸 우리 대한민국. 그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제인아,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낯설고 어색했을 텐데,
부끄럼 없이 당당히 무대에 선 네 모습이 자랑스러웠어.
네가 읽어 내려간 한글 가사 덕분에 모두가 한국어로 함께 노래하던 순간,
엄마는 가슴이 벅차올랐단다.
Jane, you’re gonna be gol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