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나는 누구의 데이터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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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예루살렘 법정.
한 남자가 방탄유리 부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SS 장교. 홀로코스트의 실행자.
수백만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낸 남자.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 이유는 그가 괴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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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평범했다
아이히만은 잔인한 성향도 없었고,
특별히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명령을 충실히 따른 평범한 관료였습니다.
"나는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나는 내 직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불렀습니다.
> "생각하지 않은 복종이 대규모 악을 가능하게 한다."
특별히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 따른 평범한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마주합니다.
AI 시대의 '악의 평범성'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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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국회를 봉쇄하라."
"의원들을 체포하라."
하지만 일부 군인들은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생각하지 않고 명령만 따랐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날 밤 무너졌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개인, 판단하는 시민—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입니다.
그런데 AI 시대는 이 방어선을 위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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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는 생각을 대신한다
"AI한테 물어봐."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거야."
"시스템이 그렇게 판단했어."
편리합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시나리오 1: AI 범죄 예측 시스템
어느 나라가 AI 범죄 예측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AI가 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사전에 찾아냅니다.
경찰은 AI가 지목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때로 체포합니다.
"AI가 그렇게 판단했으니까요."
처음엔 범죄율이 감소합니다.
모두가 안전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AI가 특정 지역, 특정 인종, 특정 계층을 더 많이 지목한다는 것을.
편향된 데이터로 학습한 AI는 편향된 판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AI가 한 거니까요."
시나리오 2: AI 여론 조작
권력자가 국가 주도 AI 시스템을 장악했습니다.
AI가 뉴스를 추천하고, 검색 결과를 조정하고, SNS 알고리즘을 통제합니다.
시민들은 권력자에게 유리한 정보만 보게 됩니다.
반대 의견은 검색 결과 10페이지 밖으로 밀려납니다.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은 AI가 보여주는 정보를 사실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AI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배웠으니까요.
시나리오 3: AI 명령 체계
군대에 AI 지휘 시스템이 도입됩니다.
AI가 전술을 분석하고, 목표를 선정하고, 작전을 명령합니다.
병사들은 AI의 명령을 따릅니다.
"시스템이 최적의 판단을 했을 거야."
어느 날, AI가 민간인 지역을 타깃으로 지정합니다.
병사들은 의문을 품지만, 명령을 수행합니다.
"AI가 판단한 건데 내가 뭘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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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데이터는 지금 어디에 있나
잠깐, 추상적인 이야기는 그만하고.
당신의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오늘 하루, 당신이 생성한 데이터를 세어볼까요?
- 아침 알람 시간과 수면 패턴 (스마트워치)
- 검색 기록 20~30개 (구글, 네이버)
- 위치 정보 수십 개 (GPS, 와이파이)
- 메시지 내용 (카톡, 문자)
- 사진과 영상 (갤러리)
- 음성 명령 (시리, 빅스비, 알렉사)
- 쇼핑 기록 (쿠팡, 11번가)
- 영상 시청 기록 (넷플릭스, 유튜브)
- SNS 활동 (인스타, 트위터, 페이스북)
- 금융 정보 (카드 사용 내역)
하루에 수백 개, 일 년이면 수만 개.
이 데이터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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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의 여행
당신의 검색 기록을 예로 들어봅시다.
"서울 맛집 추천"
만약 구글에서 검색했다면:
1. 미국 캘리포니아의 구글 서버로 전송
2. AI가 당신의 위치, 과거 검색 기록, 취향 분석
3. 결과 반환
4. 당신의 데이터는 구글 광고 타기팅에 활용
5. 법적으로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제공 가능
만약 중국 앱에서 검색했다면:
1. 중국 서버로 전송
2. 중국 정부의 데이터 보안법에 따라 정부 접근 가능
3. 당신의 위치, 취향, 행동 패턴이 기록됨
만약 한국 포털에서 검색했다면:
1. 국내 서버에 저장
2. 하지만 AI 모델은 미국 기술 기반일 가능성 높음
3. 프레임워크(PyTorch, Tensor Flow)는 미국산
결론: 완전히 한국 안에 머무는 데이터는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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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주권이란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당신의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프라이버시 문제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주권의 문제"입니다.
¤ 왜 중요한가?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의 모든 의료 데이터가 외국 AI 기업 서버에 저장되어 있다고 칩시다.
- 신약 개발은 그 나라가 먼저 합니다
- 건강 정책 데이터 분석도 그들이 주도합니다
- 심지어 국가 안보 정보까지 유출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잃는 것은 미래를 잃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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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소버린 AI가 필요하다
'소버린 AI'는 단순히 AI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데이터부터 모델, 인프라, 운영까지 모두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생태계"를 뜻합니다.
¤ 소버린 AI가 있으면:
- 민감 데이터를 국내에서 안전하게 관리
- AI 편향을 우리가 통제하고 수정 가능
- 정책 결정권 확보 (갑자기 서비스 중단 없음)
- 경제적 독립성
- 국가 안보 강화
¤ 소버린 AI가 없으면:
- 데이터가 외국 서버에 저장
- 알고리즘 편향을 통제할 수 없음
- 외국 정부나 기업의 정책에 휘둘림
- 경제적 종속
- 안보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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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소버린 AI를 확보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위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AI가 국가 주도형이 되면,
권력자가 그 AI를 장악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AI에 종속되는 것도 문제지만,
자국의 독재자에게 종속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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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반복된다
시진핑:
- 2012년 주석 취임
- 2018년 종신 집권 가능하도록 헌법 개정
- AI 감시 체계로 전 국민 통제
푸틴:
- 2000년 대통령 취임
- 2024년 현재까지 권력 유지
- 반대파 억압, 언론 통제
윤석열:
-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 민주주의를 뒤집으려 시도
- 다행히 시민과 군인들이 막아냄
권력은 달콤합니다.
한 번 맛보면 놓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AI는 권력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완벽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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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의 판옵티콘
18세기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감옥.
중앙에 감시탑, 주변에 원형 감방.
감시탑에서는 모든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감시탑이 자기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은 "항상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검열"합니다.
미셸 푸코는 이것을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로 확장했습니다.
AI는 완벽한 디지털 판옵티콘입니다.
- 모든 검색, 메시지, 위치가 기록됩니다
- 당신은 언제 감시당하는지 모릅니다
- 그래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됩니다
"혹시 이 검색이 문제가 될까?"
"이 말을 해도 될까?"
"이 모임에 가도 괜찮을까?"
생각의 자유가 사라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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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소버린 AI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술 개발과 동시에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1. 법과 제도
-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독립적 AI 감독 기구"
- AI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의무화"
- 알고리즘 편향 "정기 감사 제도"
- AI 오남용 신고 채널과 내부고발자 보호
2. 분권형 구조
- 중앙집중형이 아닌 지역·부처 간 분산 운영
- 한 곳에서 모든 AI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게 설계
- 권력 분산이 곧 안전장치
3. 시민 참여
- AI 윤리위원회에 시민사회, 언론, 학계 참여 보장
-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
- 시민의 알 권리 보장
4. 문화적 안전장치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법과 제도는 권력자가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 정서, 문화, 역사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
- 촛불 혁명의 경험
- 12·3 내란을 막아낸 시민의식
이런 것들이 스며들어 만든 문화야말로
가장 강력한 방어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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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 "악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 생각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AI 시대에는 이렇게 바뀝니다:
> "생각하지 않고 AI에 복종하는 평범한 사람이
> 대규모 악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AI가 이 결정을 내렸는데, 정말 옳을까?"
"이 알고리즘은 누가 만들었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까?"
"내 데이터는 지금 어디에 있고, 누가 사용할까?"
생각하는 개인,
판단하는 시민,
의문을 품는 사회—
이것이 AI 시대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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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이야기: 10년 후, 두 개의 한국
오늘 우리는 데이터 주권과 안전장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달라질까?"
다음 편에서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그려보겠습니다.
¤ 10년 후, 2035년.
시나리오 A:
소버린 AI를 확보하고 안전장치를 갖춘 한국
시나리오 B:
외국 AI에 종속되거나, 독재자가 AI를 장악한 한국
같은 기술, 다른 선택.
당신은 어느 미래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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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 시리즈]
1화: 2025년, 우리는 AI 전쟁터에 서 있다
2화: AI 시대, 나는 누구의 데이터가 될 것인가 (지금 읽고 계신 글)
→ 3화: 10년 후, 두 개의 한국 (coming soon)
→ 4화: 블랙록 MOU, 축하해야 할까 걱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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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데이터는 당신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의식입니다.
다음 편도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