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타 복싱클럽

by 은빛바다

확실히 규모가 다르다.


조금 과장하면 고등학교 시절에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던 강당과 비슷한 크기다.


벽을 따라서 여러 가지 헬스기구가 배치되고, 관원 10여 명이 얽히지 않고 줄넘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구비되어 있다. 어느 구석도 그림자가 지지 않을 정도로 조명까지 밝고 화려하다.


링도 넓은 편이다. 잽을 던지면서 뒤로 두 걸음만 물러서면 링줄이 등에 닿는 체육관도 많다. 관원들은 전후좌우 스텝을 밟으면서 마음껏 스파링을 뛰고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우리 시에서 가장 큰 복싱 체육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다른 복싱 체육관도 알아봤지만 이만한 규모는 없다.


사무실 테이블에서 상담하는 중이다. 마주 앉은 노원천 관장도 어디든 이만한 체육관은 없을 거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한쪽 벽이 황금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생활체육대회 우승 트로피가 체육관의 위상을 세운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선생님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 이런 운동을 하기에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어차피 나올 할 질문이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른다.


“마흔여덟이에요.”


노관장이 당황스러웠는지 뒤에 선 박세훈 수석 코치를 돌아본다. 박코치에 대한 첫인상은 두 가지다. 날카롭고 단단하다.


“너 몇 살이지?”


“스물다섯입니다.”


박코치가 콧등을 찡그린다.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오는 그의 행동이다.


“이 나이에 복싱을 배우러 오지 않나 봐요.”


내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다. 그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다시 체육관을 둘러본다.


관원들이 땀을 흘리며 샌드백을 치거나 쉐도우 복싱을 한다. 나와 다른 부류의 인간인 것 같다. 저들을 동경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저 안으로 들어가기가 버겁다.


복싱은 주먹으로 상대를 때려서 제압하는 운동이니까, 맞는 건, 누구나 그렇겠지만, 두렵다.


“아니에요. 옛날하고 많이 달라요. 헝그리 복서라고 굶으면서 복싱하던 시절은 지나갔지요. 홍수환 유명우 박종팔 장정구 기억이나 하나요? 김동현 정찬성 최두호 같은 UFC 선수가 인기지. 요즘 누가 세계챔피언 되려고 체육관 나와요? 건강 챙기러 나오죠. 그런데 왜 복싱을 하려고 해요? 그……”


의외로 달변이다. 부지런히 설명하던 노관장이 말끝을 흐린다. 나는 충분히 뒷말을 짐작한다. 그…… 나이에?


“허리가 좀 아프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도 뻐근하고요. 무슨 운동이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요.”


동시에 노관장과 박코치가 눈을 마주친다. 여기가 재활훈련원은 아니다.


과연 이 아저씨가 훈련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서로 그런 의견을 주고받는 것 같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과연 여기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체육관에 아이랑 여성 관원도 많아요. 천천히 배워나가면 됩니다. 이거 작성을 해주세요.”


노관장이 입관 신청서를 내민다.


이름: 김백선. 나이: 48세. 연락처: 010-++++-****. 주소: ……. 나는 볼펜으로 작성하다가 등록 기간에서 멈춘다. 어느 정도로 할까, 고민한다.


노관장이 지켜보고 있다. 그에게는 가장 관심이 가는 사항이다.


코치에게 미트를 받는 중학생이 보인다.


“스트레이트! 훅! 어퍼!”


짧은 지시를 따라 허공을 가로지르는 주먹이 빠르다. 저렇게 어린아이도 복싱을 배우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자신감을 갖으려고 노력한다.


등록 기간을 1년으로 적는다. 중간에 그만두면 그만큼 돈을 날리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마저 꿀리고 싶지는 않다.


일시불로 카드를 긁는다. 왠지 할부로 끊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장기간으로 등록하자 노관장의 얼굴이 밝아진다.


“형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카드를 돌려주면서 부르는 호칭이 바뀐다. 남자끼리 이런 식으로 친해진다.


“저는 도서관 직원이에요. 햇살도서관이요.”


“아, 그래요? 좋은 곳에서 일하시네요. 관장님이세요?”


“아니요. 팀장이에요.”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데요?”


“홈플러스 사거리에서 리첸시아 쪽으로 들어가면 세무서가 있는데 바로 옆에 있어요. 혹시 저희 도서관에 오신 적 있나요?”


대부분 주민이 도서관과 상관없이 지낸다. 특히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 같다. 자세하게 위치를 알려주는 이유다. 더 묻지 말라는 의도다.


“아니요. 도서관은 태어나서 가 본 적이 없어요.”


역시.


“그 말은 알아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


“요즘은 바뀌었죠. 월급은 칼보다 강하다.”


실없는 농담에 노관장과 같이 킥킥거린다.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복싱 체육관 상호가 왜 ‘올스타’죠?”

노관장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복싱하는 모든 관원이 스타가 될 거라는 뜻이에요. 형님도 곧 그렇게 될 거예요. 원래는 엘리트 복싱 체육관으로 하려다가 바꿨어요.”


첫날이라 체육관의 분위기를 익힌다. 박코치가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사물함을 지정받고, 탈의실 사용 방법, 체육관 운영 시간,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훈련 과정 등 나는 군대 신병처럼 정신을 바싹 차리고 듣는다.


운동하다가 잠시 나를 바라보는 푸릇한 청년의 눈동자가 부담스럽다. 저 중년 늙은이가 도대체 이런 곳에는 왜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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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갈아입을 속옷을 미리 챙기고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근무를 마치자 곧장 체육관으로 향한다. 직원에게는 비밀이다. 괜히 털어놓기가 부끄럽다.


탈의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박코치에게 손목 붕대 감는 방법을 익힌다. 복싱 경기를 보면서 선수가 어떻게 붕대를 감는지 제일 궁금했다.


손목과 정권을 감고 손가락 사이로 돌리며 단단히 고정시킨다.


사서 시절에 하도 책을 많이 날라서 아직까지도 손목에 찌릿한 통증이 있다. 붕대를 감으니 그런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것만으로 괜히 우쭐해진다. 고작 하루 만에 내가 복싱 선수라도 된 기분이다.


기초체력 훈련인 러닝과 줄넘기를 한다.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줄넘기는 3분 동안 쉬지 않고 뛸 수 없다. 자꾸 발에 걸린다. 중간에 멈춰 거친 숨을 추슬러야 한다.


그동안 운동과 담쌓은 중년의 어쩔 수 없는 체력이다. 헉헉거리며 무릎을 짚고 있으면 박코치가 다가와서 쉬지 말라고 재촉한다. 잠깐만, 잠깐만, 손을 젓다가 다시 독하게 이를 악물면서 줄넘기를 돌린다.


“만일 몸 어디든 통증이 생기면 곧장 말하세요. 저희는 프로 선수가 아닙니다. 쉬는 것도 운동의 연장이에요. 참고 운동하려다가 잘못하면 큰일 나요.”


차츰 어깨와 등골이 뻐근해지면서 아프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 상반신을 일으키기가 어렵다. 밥상을 차리는 아내가 혀를 차면서 딱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근육통 약을 먹으면서 매일 체육관에 나간다. 중년의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팀장이 되면 도서관 야간 근무에서 빠진다. 반면 친구들과 술자리가 생기면 도서관 당직이라는 핑계로 빠진다.


집에도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어떻게든 체육관 출석은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꾸준하게 보름 정도 기초 체력을 다지자 코치진의 지도로 원투 스트레이트를 치는 자세를 배운다. 보통 입관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가르치는데 나는 워낙 체력이 없어서 기간을 늘렸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4층까지 후다닥 뛰어갈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왼손 주먹을 뻗으면서 원, 오른손 주먹을 뻗으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허리를 돌리며 투, 벽거울을 바라보며 이 동작을 반복한다. 내 눈에도 엉성하기 짝이 없고 민망하다.


“형님, 잘하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어색할 거예요. 오른손 내밀 때 허리를 확실하게 돌리세요. 그래야 주먹에 체중이 실립니다.”


박코치가 지나가다가 박수를 치면서 격려한다. 왠지 힘이 솟구치고 자신감도 생긴다.


원투 자세가 몸에 익으면 잽 훅 어퍼컷 순으로 배운다. 기본적인 펀치를 날릴 수 있으면 연속 동작으로 들어간다.


잽 잽 스트레이트. 잽 어퍼 훅 카운터. 원투원투 양훅 양어퍼. 다음으로 더킹 위빙 같은 회피 동작을 배운다. 복싱의 기술은 수백 가지다.


그러면서 미트를 받는다. 코치가 두꺼운 가죽판을 손에 끼우고 내민다.


관원은 글러브를 끼고 반복적으로 그것을 친다. 익숙해지면 코치의 지시에 따라 3분 동안 쉬지 않고 펀치를 날려야 한다. 그래야 몸에 자세도 잡히고 스피드가 붙는다.


이걸 ‘미트를 받는다’고 하는데, 3분만 미트를 받으면 온몸이 땀으로 젖고 가뿐 숨을 몰아쉬게 된다.


다음으로 쉐도우 샌드백 스파링 헬스 등 자율적으로 훈련한다. 이 시간에 관원과 낯을 익힌다.


먼저 말을 걸기가 어색했는데, 벽거울 앞에서 오징어가 흐물거리는 동작으로 혼자 원투를 뻗고 있으니 지나가던 관원들이 서툰 자세를 지적했다.


“토끼처럼 폴짝폴짝 스텝을 뛰지 마세요. 몸이 너무 뻣뻣하세요. 발바닥이 지면을 스칠 정도로 부드럽게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정면이 아니라 45도로 뛰어야 해요.”


한참 어린 동생에게 충고를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어쩌겠는가, 나는 신참이고 그들은 체육관 선배들이다. 무조건 자존심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원과 대화를 더 섞게 되고, 훈련을 마치고 나서면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간단하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박코치의 배려였다. 친하게 지내는 관원에게 내가 체육관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먼저 말을 걸도록 부탁한 것이다.


운동 후 관원과 함께 샤워는 꿀맛이다. 주차는 3시간 무료다. 여유 있게 운동할 수 있다. 역시 올스타는 최고의 시설을 갖춘 복싱 체육관이라고 인정한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


복싱을 배우고 싶어요.


중학교 시절에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지만, 당시 우리 집 사정이 어려웠다.


뻔한 레퍼토리이지만 아버지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나는 흔한 태권도 도장도 가보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지났다.


학교 복싱부에 가입 신청을 내지만 담임 선생님에게 제지당했다. 당시 복싱부는 주먹을 쓰는 어깨들의 집합소였다. 싸움을 좀 한다 싶으면 복싱부로 모였다.


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가입을 막았으리라 짐작한다.


어쩌면 방과 후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할 학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도서부원이어서 맨날 책 정리하느라 다른 학생보다 늦게 학교에서 나왔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다가 낯선 형들에게 끌려가서 삥을 뜯긴 적도 여러 번이다. 나는 운동 신경이 없고, 겁이 많다. 학창 시절 내내 싸움은 해본 적이 없다.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어쩔 수 없이 잘 덮어두면서 지낸다. 절대로 들추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야 여유가 생겨 돌아보니, 지난 날에 내가 정말 원했던 게 무엇이었나 회의가 일어났다.


복싱을 배워 어딘가에 써먹을 곳도 없다. 괜히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주먹을 휘두르면 합의금 문제로 골치를 썩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의 나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고 싶다.


나는 우리 시에서 가장 큰 복싱체육관을 검색한다. 시설이 좋고, 코치가 4명이나 있다. 이제 그 체육관에 다닐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새파란 아이들과 훈련을 견딜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꼰대 소리나 들으면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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