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관계의 종말
우리는 때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둔다.
“그냥 친구야”, “아직은 생각이 없어”, “가볍게 만나자” 같은 말로
서로의 마음을 애써 정의하지 않은 채 관계를 이어간다.
처음엔 그게 편하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어떤 의미로 이 관계 안에 있는 걸까.
상대는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건 진짜 관계일까, 아니면 책임을 유예한 채 머무는 착각일까.
책임 없는 관계는 처음엔 쉬워 보이지만,
결국 더 큰 불안을 낳는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 못한 채 쌓여가는 오해,
상대의 태도 하나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나 자신.
명확한 약속 없이 쌓인 시간은 결국, 책임 없는 상처로 돌아온다.
관계에는 두 가지 책임이 있다.
하나는 '감정에 대한 책임',
다른 하나는 '결정에 대한 책임'이다.
감정에 대한 책임은,
상대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지 않는 것.
결정에 대한 책임은,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갈지 말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흐릿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둘을 회피한다.
감정을 알면서도 “우린 그냥 친구잖아”라고 선을 긋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좀 더 지켜보자”고 시간을 끈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깊어진다.
책임 없는 관계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불안한 상태다.
내가 이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것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도 없다.
사랑은 결국 책임을 수반한다.
감정에 솔직할 책임,
상대의 감정을 받아들일 책임,
함께 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책임.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내가 이 관계를 가볍게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책임이 있어야만
우리는 진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모든 관계가 무거워야 한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가벼운 관계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대하고,
깊은 관계라면, 그만큼의 책임을 감당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책임을 회피한 채 맺은 관계는 결국 불행해진다.
관계는 흘러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임은 그 과정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그러니 관계의 시작은 설렘일 수 있어도,
관계의 지속은 결국 책임이다.
그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지문 : 질문이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