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하며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사실 축복 같은 일이다.
감정 표현이 솔직한 나는 내면이 투명한 사람들에게 끌린다. 반대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싫어서도 받아들이지 못해서도 아니다. 다만 호불호가 분명한 나로서는 마음이 읽히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새로 합류한 막내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함께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 팀에 투입된 이후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가까워졌다.
나보다 어린데도 때론 성숙한 모습을 보였고 내가 감정을 드러내면 부끄러워하면서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아이였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이렇게까지 속마음을 나눠도 될까? 혹시 이 아이가 떠나면 나는 어떻게 하지?”
불안한 예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한국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실 그 전, 둘이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복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설마 진짜 돌아가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결정 소식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물론 그 아이의 인생을 내가 대신 책임질 수는 없는 일. 분명 선택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후회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몸도 좋지 않아 숙소에서 이틀간 쉬는 동안 나는 일본에서 함께한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곱씹게 되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기에 슬펐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못 볼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결이 맞는 사람과의 만남은 나를 성장시키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는 것. 그들과의 이별은 잠시 아플 뿐, 결국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혼자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거리를 구경하는 나.
그런 나 자신이 좋다.
나와 어울려 주는 사람들, 시간을 함께 나눠주는 이들에게 더없이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내 곁에는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웃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