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근길 기록

by 옆길

도쿄에서의 출퇴근은 무척 단순하다. 지금 내가 머무는 곳에서 오피스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이라 특별히 힘들거나 고된 느낌이 없다. 아침에 여유롭게 집을 나서 천천히 걸어가면 도심의 활기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짧은 거리 덕분에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하게 출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 선릉에서 근무할 당시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나는 경기도에서 선릉까지 매일같이 이동해야 했고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흔히들 ‘지옥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로 꽉 들어찬 지하철을 매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대의 지하철은 말 그대로 숨조차 쉬기 힘든 곳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고 마치 작은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이 나를 덮쳐왔다.


그럴 때면 종종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어졌다. 나도 모르게 공황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중간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갔다. 역 주변 벤치나 의자에 앉아 한참 숨을 고르곤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지하철에 올라타 출근길을 이어갔다. 단순히 일터로 향하는 길인데도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 싸워야 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출근 시간이 온전히 고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나만의 시간으로 바꾸려 애썼다. 책을 읽거나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며 그 시간을 활용했다. 흔히들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말하는 출근길이지만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꾸준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하철 안에서 펼친 작은 책 한 권이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고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강의 음성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출근은 단순한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때로는 나를 지치게 하고 숨 막히게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게 인내를 가르쳐주고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게 해주었다. 지금은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덕분에 훨씬 가벼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릉으로 향하던 그 긴 시간의 기억은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것은 힘겨움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과정이었다.


출근길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어떤 이는 그 길에서 피곤함만을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그 시간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나에게 출근은 두 가지 모두였다. 지옥철 속에서의 고통과, 그 안에서 만들어낸 나만의 배움의 시간. 그 상반된 경험이 모여 지금의 나를 형성해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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