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기술보다 중요한 건, 흔적의 기술이었다
그동안 나는 돈을 아끼는 데는 꽤 진심이었다.
카드 실적을 따지고, 할인 쿠폰을 찾아 헤매고,
가성비와 최저가에 집착하며 살았다.
그렇게 한 달, 또 한 달을 나름 알뜰하게 보냈지만
통장을 들여다볼 때마다 마음은 허전했다.
열심히 썼고, 또 아꼈지만
정작 ‘남은 돈’이란 건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정산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모은 돈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출은 꼼꼼하게 기록했는데
자산의 구조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통장에 얼마나 남았는지,
예적금은 어디에 얼마 있는지 ,
투자한 종목은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 ,
비상금은 정말 존재하는지,
그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내가 지금껏 돈을 ‘어떻게 쓸까’에만 몰두했지
‘어떻게 남을까’에 대한 구조는 세워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때부터
‘남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돈의 구조를 다시 짜기 시작했다.
통장 쪼개기: 생활비, 고정비, 예비비를 명확히 구분
지출 후 저축에서 저축 후 지출로 전환
매달 자산 흐름표 작성 (전체 잔액을 한눈에 보는 루틴)
신기하게도
돈을 ‘어떻게 쓸지’만 고민할 땐 늘 부족했는데
‘어떻게 남길지’에 집중하자
돈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쌓이기 시작했다.
돈을 모은다는 건
단지 통장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내 감정을 안정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병원비가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았고,
월급날을 기다리며 초조해하지 않았고 ,
소비 후 자책보다, 계획된 지출에 안도할 수 있었다
내가 남긴 돈은
단지 ‘재산’이 아니라
나를 덜 흔들리게 하는 심리적 쿠션이었다.
예전엔 예산을 짜고, 지출을 줄이고,
계획을 잘 지키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돈이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나는 더 이상
어떻게 돈을 잘 쓸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잘 남길까를 고민한다.
그 구조 위에서,
나는 오늘도 내 삶의 안전망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