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내 이름으로 집을 짓는 일은 너무 낯설었다
“청약 넣었어?”
“1순위 조건은 돼?”
“이번 분양가 진짜 괜찮던데.”
친구들 사이에서 가끔 들리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청약이라는 말이 자꾸만 나를 ‘모르는 세계의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통장엔 청약저축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었다.
‘나중에’, ‘집 살 때쯤’, ‘결혼하면’
언제나 미래형 문장으로만 존재하던 그 단어.
생각해 보면,
청약이 어려워서라기보단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같아서’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월세 살고 있고
당장 내 집 마련 계획도 없고
수도권 가점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러니까, 내가 해봤자 의미 없을 거라고 스스로 판단한 거다.
그건 정보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했다.
'내가 감히?' 하는 마음.
청약 정보는 많았다.
하지만 정작 청약을 알아보게 만드는 건 ‘의지’가 아니라 ‘자기 확신’이었다.
내가 이 도시에서 살아갈 거라고
내가 언젠가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준비할 자격이 있다고
그걸 믿기 전까지
나는 청약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어느 날,
뉴스 대신 주택청약 홈페이지를 열었다.
인터페이스는 낯설었고, 용어는 어렵고, 조건은 까다로웠다.
그런데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준비하면 1년 뒤에는 ‘1순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청약이 바로 집이 되는 건 아니지만,
집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라는 걸 그제야 이해했다.
매달 10만 원, 자동이체로 청약저축 납입
→ 작지만 끊지 않는 루틴
→ 가점용이 아닌 습관용 통장
1년에 한 번, 주택청약홈에서 내 순위 확인
→ 조건 변화, 입주자격 점검
→ 나도 이제 '진입자'라는 인식
좋은 분양 뉴스가 뜨면 일단 클릭부터 해본다
→ 기회를 스크롤로 넘기지 않기
→ 상상이라도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집이 아직 멀어도, 나는 그 방향을 향해 걷기로 했다
청약은 여전히 어렵고,
당첨은 여전히 희박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어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기로 했다.
청약은 미래의 집을 사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나를 준비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작은 통장 하나를 통해
나는 오늘도 그 미래와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