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했지만, 마음은 투자 중이었다
"야,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점심만 먹고 가지 않았냐?"
슬며시 웃으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도 회의는 취소됐고, 팀장은 외근 중이었고, 나는 사무실에 앉아
할 일 없는 체크리스트와 마주한 채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이른바, 월급루팡.
일은 없는데 월급은 들어오고,
바쁘지 않지만 보람도 없고,
무기력한데 괜히 피곤하다.
누구에게 말은 못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이건 오래 가선 안 될 감정이었다.
출근해서 일은 없는데,
카카오페이 들어가서 예적금 이율을 둘러보는 건 죄일까?
그게 나의 재테크 시작이었다.
한창 월급루팡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나는 그 시간만큼이라도 내 돈을 일하게 만들기로 했다.
퇴근 전에 적금 하나 개설했고,
매달 자동이체 날짜를 월급 다음날로 바꿨고,
증권사 앱을 깔아 ETF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은 없어도, 내 돈은 일하게 하자.
이게 그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였다.
회사에 앉으면 컴퓨터를 켜기 전에
먼저 켜는 건 카카오페이나 증권사 앱이었다.
오늘 입금된 적금 확인
지난주 ETF 수익률 체크
카드 실적 누적 확인
자동이체 실패 여부 확인
5분이면 끝났다.
이 5분이 내 하루의 중심을 바꿨다.
누군가는 커피부터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지만,
나는 내 돈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게 나를 '출근한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때 난,
누구보다 느슨하게 회사에 있었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내 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할 수 있는 걸 했다.
돈을 관리하고, 흐름을 정리하고, 루틴을 만들었다.
그건 나를 구한 작은 습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