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산 옷. 급히 웃은 하루의 생존 매뉴얼
우리는 지상철에서 쫓겨나듯 내려야 했고,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
주위를 비추는 건 멈춰 선 차량들의 붉은 브레이크 라이트 뿐이었다.
역사 직원들은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라고 안내했지만,
홀딱 젖은 채 지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리쳤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택시를 잡으라고요!”
그때, 재난 경보 문자가 역 안을 울려댔다.
1시간 안에 더 큰 폭우가 예보된다는 문자였다.
나는 다행히 남편이 휴무 중이라 집에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최대한 빠른 길을 찾아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도로 상황이 최악인 만큼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마리아는 체온이 떨어져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상철역과 이어진 몰이 있어 그쪽으로 이동했다.
몰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천장에서는 물이 새고, 휘황찬란했던 매장들은
비닐과 커버로 상품을 감싸며 피해를 막고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빠른 쇼핑을 했다.
색깔도, 스타일도, 사이즈도 따질 여유 없었다.
우리가 원한 건 단 하나
지금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옷.
대충 맞는 사이즈를 고르고, 그대로 계산대로 향했다.
입은 채로 계산해 달라고 부탁했고, 도난 방지 태그가 달린 옷을 입은 우리를
점원은 등에 스캐너를 갖다 대며 결제를 진행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그제야 우리는 제대로 웃었다.
그날, 처음으로.
몰에서 새 옷 같지 않은 새 옷을 입은 채로 계산을 마치고 나왔을 땐,
남편이 도착해 있었다.
낯익은 차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젖은 머리칼과 하루의 피로가 쌓여 붉어진 눈이 된 나를 본 남편은 나를 안아주었다.
"자 이제 집에 가자"
그 말이 얼마나 안도가 되었는지 모른다.
마리아와 나는 그렇게
극적으로 구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