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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도시에서 출근 중입니다

2024년 4월 16일- 두바이 침수

by 구름 위 기록자

2024년 4월 16일 아침, 두바이에선 이례적인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회사로 향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려온 비 소식에 반가움도 잠시,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는 심상치 않게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은 내내 한숨을 쉬셨고, 마치 그 마음을 따라가듯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트레이닝 중엔 몰랐지만, 잠깐 창밖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구름이 새카맣게 내려앉아 있었고, 도로는 이미 절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차들은 하나둘 멈춰 섰고, 하늘은 시시각각 색을 바꾸더니…

처음 보는 초록빛 하늘로 물들었다.


그 순간, 시야는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의 걱정은 오늘 트레이닝보다, 내일 이곳까지 다시 어떻게 올 수 있을까로 옮겨갔다.
곧 비행을 나가는 동료들도 걱정이었다.
결국 회사는 상황을 고려해 트레이닝을 한 시간 정도 앞당겨 종료했다.

건물 밖을 나서자, 빗줄기는 더욱 세차 졌다.


택시도, 버스도 오지 않았고, 입구엔 발 묶인 동료들로 북적였다.

나는 도저히 택시는 못 잡을 것 같아, 조금 걸어서 근처 지상철을 타기로 했다.
물은 발목 정도라 괜찮겠다 싶었지만,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상황은 달라졌다.

물은 순식간에 종아리를 넘고,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었고, 소용돌이치는 물에 몸이 휩쓸렸다.


처음엔 ‘괜찮겠지’ 싶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우산은 뒤집혔고,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빨간 우산은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물속에 빠진 내 모습이

내일 조간 뉴스에 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무서운데 웃긴…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때, 내 앞에 까맣게 틴팅된 차가 천천히 다가왔다.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린 운전자가 외쳤다.

“도와줄게요! 어서 타요!”

처음엔 망설였다. 깜깜한 차 안, 낯선 사람.
하지만 이 호의를 거절하면, 내가 들어갈 곳은 차가 아니라 소용돌이 속일지도 몰랐다.


나는 결국 차에 올라탔다.

알고 보니 그분은 같은 항공사에서 일하는 동료였다.
지나가던 길에 내가 위험해 보여 차를 세웠다고 했다.

도로 위는 점점 더 물에 잠기고 있었고, 그는 그 속을 뚫고 지상철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날, 나의 작은 영웅이었다.


그렇게 이제 집에 갈 수 있을 거란 안도감과 함께 나는 지상철에 올라탔다.

같은 트레이닝을 받았던 동료 마리아도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나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온 거야?" 내가 묻자,

마리아는 "수영하듯 왔지 뭐" 라며 웃었다.

그 웃음에 나도 웃음이 터졌다.

상황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함께여서 덜 무서웠다.


지상철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바깥 광경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8차선인 메인 셰잌자이드 로드는 주차장이 되었고,

차에서 내려 물을 헤치고 세우고 걷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침수된 차량, 버려진 차들이 도로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 광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몇 정거장을 지나가던 중, 갑자기 경보음이 울렸다.

지상철이 급정거했다.


잠시 후, 차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재 기상 상황으로 인해 메트로 운행이 중단됩니다."


순간 차내 안에 있는 모두가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지금 이곳은, 말 그대로 고립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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