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24
암스테르담행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오늘 나의 오피스는 라운지다.
내가 좋아하는 포지션이지만,
암스테르담은 런던과 호주만큼이나 ‘파티 모드’ 승객이 많은 노선이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모히또로 가득 채운 텀블러 랙은 두 명의 손님 손에서 순식간에 비워졌다.
바 카트의 맥주도 바닥이 나, 다른 주류를 권하며 숨 고를 틈도 없이 라운지와 갤리를 오갔다.
저녁식사 시간마저 잊게 만드는 붐비는 라운지였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하던 중, 한 동료가 라운지를 지나며 툭 던졌다.
“넌 좋겠다. 일 쉽게 해서.”
순간,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그 말이 크게 화살처럼 꽂힌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나를 향한 시선이 ‘덜 힘든 자리에서 편하게 일하는 사람’으로만 고정된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칵테일 잔에 담긴 얼음보다 마음은 더 차가워졌다.
랜딩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캡틴의 PA가 그 감정을 덮었지만, 잔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돌아오는 편의 포지션을 정할 때, 그 동료가 라운지를 골랐다.
“나도 내일은 스트레스 없이 일해야지.”라는 말을 남기며.
일부러 나를 들으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주변 크루들이 대신 민망해할 만큼 뻔뻔했다.
그래, 이제 막 비즈니스 클래스에 올라온 동료다.
각 역할의 흐름을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른다’와 ‘쉽다’는 다르다.
모든 것을 불공평하다고만 보는 시선에서는 세상이 그렇게만 보일 테니까.
그녀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억울함이 금세 사라지는 건 아니다.
뜨거운 샤워로도 씻겨지지 않는 마음은 결국 친구와 가족에게 털어놓았다.
열심히 했는데도 다르게 평가받는 순간, 그 잣대에 상처받는 일이 종종 있다.
맛있는 걸 먹으며 기분을 풀기 위해 룸서비스를 시도했지만,
전화는 다섯 번 만에 받았고, 그마저도 수화기 너머로는 스텝이
한숨부터 내쉬는 목소리로 응답을 하였다.
그 한숨 속에서, 오늘 나의 하루가 겹쳐 보였다.
‘나도 오늘 힘들었지만, 당신도 당신 나름의 하루를 버텼을 테지.’
그냥 식당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놓은 수화기 뒤로, 마음속으로만 전했다.
‘그래요. 오늘은 우리 둘 다 좋은 날이 아니었네요.
하지만 부디 기분이 조금은 풀리길 바랍니다.
혹시 이런 날이 계속된다면,
늘 한숨 쉬는 날로 보내지 말고,
조금 더 웃으며 살아요.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요.’
다음 날, 비행 전 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애썼다.
네거티브한 감정을 가슴속에 숨겨두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돌아오는 편에서, 전날 나에게 뻔뻔한 코멘트를 남겼던 그 크루가 라운지를 맡게 됐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바쁜 라운지를 운영하게 되었다.
나는 캐빈 포지션에서 승객들을 응대했다.
서비스가 끝날 무렵, 사무장과 부사무장이 나를 찾아왔다.
“어제 라운지 바빴는데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요. 오늘 캐빈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기 좋네요.”
그 말 한마디에 날개를 단 듯 힘이 났다. 나는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비행이 끝날 무렵, 라운지를 맡은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어제 오해해서 미안해. 라운지가 이렇게 바쁜 줄 몰랐어.”
그러면서 머쓱하게 사과를 건넸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풀렸다.
때로는 말이 아닌, 하루의 경험이 가장 확실한 답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