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얼마 전, 고전과 낭만 사이 <베토벤>
음악회에 다녀왔어요.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에그몬트’ 서곡,
교향곡 5번 ‘운명’이었어요.
모든 곡에 베토벤의 격정의 삶이 담겨 있어서
와닿았지만,
저는 ‘비창‘이 정말 좋았어요.
베토벤의 비창, 특히 3악장은
저에게도 의미가 있는 곡이에요.
그래서 더 끌림이 있었나 봅니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 연주회에서
저는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했었어요.
그런데 욕심 많던 어린이,
남의 떡이 커 보였는지
어떤 언니가 연주하는 곡이
귀에 쏙 박혀버렸습니다.
그래도 듣는 귀는 있었나 봐요.
그 곡이 바로 비창 3악장이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책에
악보가 있는 걸 발견하고는
혼자 열심히 쳤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가끔 이 곡을 연주하기도 해요.
제목부터가 슬픈 기운이 감도는
‘비창’이라는 이 곡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악장 : 불안과 희망의 교차
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d&v=V6x3Gx_3E0g
1악장은 천천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되는데요.
마치 숨죽인 듯 조용한 불안감이 감돌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멜로디가 등장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런데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밝고 경쾌한 분위기도 들어요.
불안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우리도 어떤 일을 생각할 때
부정적인 면을 생각해서 어두워지다가
‘아니야, 괜찮을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잖아요.
저에게 비창 1악장은 딱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나에게 닥친 시련을 애써 외면하려,
좋은 면도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그런 상황이요.
마치 어두웠던 저의 10대 시절 같아요.
그때, 여러 가지 이유로
저는 마음이 많이 불안했었어요.
머릿속에 항상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죠.
억지로 좋은 생각을 하려 해도
이내 디폴트 값인 먹구름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내면이었습니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 같은 감정의 흐름을
베토벤이 제대로 표현한 것 같아요.
빠르게 몰아치다가
천천히 쉼을 주고
다시 속도감을 내는
다이내믹한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곡에 몰입이 됩니다.
무겁지만 경쾌함의 아이러니가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2악장 : 찾아온 평안과 위로
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d&v=xaHjlsGo1ck
2악장은 딱 두 글자로 표현한다면
‘위로’입니다.
사실,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듣고 있으면 잔잔한 호수에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며
긴장이 이완되는 편안한 느낌이죠.
현장에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연주하는
비창 2악장을 듣는데,
묘한 감정과 울컥함이 올라왔어요.
고요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이
시공간을 채우는 느낌이었어요.
진심을 담아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 “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2악장의 위안의 멜로디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2악장은 저의 40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안하고 캄캄했던 과거의 시간과 비교하면
큰 시련 없이 편안한 편이니까요.
정신적으로 이전보다 성숙해지기도 했고요.
3악장 : 삶의 의지
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d&v=DNouyWhngck
마지막 3악장은
아직도 암담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극복해보고자 하는
삶의 의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빠른 템포로
전해지는 구슬픈 멜로디가
마음을 톡톡 건드려요.
그렇지만 이곡이 마음에 더 깊이 남는 건
슬픔에 멈춰 있지 않고
단단한 어두움을
깨부숴보려는 의지가 느껴져서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보란 듯이 그것을 깨부수죠.
그래서 신기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베토벤이 청력 상실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작곡된 곡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비창이라는 곡은
베토벤이 청력 상실에 절망과 두려움,
긴박한 불안감을 느꼈다가 (1악장)
스스로를 위로하며
운명을 받아들여
평온함을 느끼고(2악장)
결국엔
청력 상실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자신의 좌절을 깨부수는 (3악장)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비창의 3악장처럼
좌절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마주하는 현실이
2악장의 잔잔한 호수처럼 늘 평온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의 고충, 사람 간의 갈등,
예기치 못한 위기의 상황이 늘 내 주변에 놓여 있고,
그것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단단한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비창 3악장의 앞부분을 쳐봤습니다.
전공자는 아니니 편하게 들어주세요.
https://youtube.com/shorts/hyZCPKfE4ZE?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