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곳 4번으로 열차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란 선 밖으로 한걸음 물러서 주시길 바랍니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2019년 8월, 두 남자의 뚜벅이 여행이 시작됐다.
두 남자는 용산 – 전주 – 익산 – 광주 – 순천 – 부산 – 서울 7개 기차역을 72시간 안에 완주했다.
1일 차 - 전주
2019년 8월, 두 남자는 전주역에 도착했다. 2019년 ‘내일로’에는 KTX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이동 방법은 ITX-새마을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KTX를 타면 전주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리지만 새마을호를 이용하면 3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동에 힘을 쏟은 두 남자는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시장으로 갔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이다. 두 남자는 비빔밥을 찾고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께서 배낭을 멘 두 청년이 신기했는지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왔느냐?, 전주에는 왜 왔느냐?, 전주에서 뭘 먹을 거냐? 할머님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한 두 남자는 비빔밥을 먹으러 왔다고 이야기 한 순간 혼이 나버리고 말았다. 할머니는 전주는 순댓국! 피순대가 듬뿍 들어간 순댓국을 먹어야 한다며 강력히 주장했다. 그렇게 두 남자는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당초에 계획했던 비빔밥이 아닌 순댓국을 점심으로 선택했다.
꾸리꾸리한 돼지 국물 냄새, 당면이 아닌 피와 콩나물로 채워진 순대, 그리고 토렴 된 밥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처음 먹어본 순댓국의 맛이었다. 깔끔한 맛을 좋아했던 두 남자였지만 전주의 순댓국은 그 반대였다. 두려웠지만 먹다 보니 순댓국 그릇을 다 비웠다.
할머님의 말이 생각났다. 전주는 순댓국! 역시나! 현지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1일 차 – 익산
전주를 짧게 돌아보고 광주를 가기 위해 익산역으로 갔다. 전주에서 광주로 가기 위해서는 익산에서 기차 환승을 해야 한다. 익산역은 전라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전라도 지역의 철도 교통 중심지다.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 모든 열차가 지나간다. 그만큼 사람도 많았고 복잡했다.
익산에는 역사 시간에 배운 미륵사지 석탑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익산역에는 미륵사지와 석탑을 홍보하는 걸개 및 안내판이 크게 있었다. '백제의 혼, 미륵사지!'
파괴된 석탑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는 파괴와 아름다움이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석탑이 가지고 있는 웅장함과 고결함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잠시 들려간 지역인 익산에서, 석탑을 바라보며 살면서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백제인의 혼이 그곳에 묻어 있음을 느꼈다. 친구는 가만히 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나에게 기차를 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미륵사지 석탑 모형을 뒤로하고 기차를 타러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혼, 무너진 탑에 어떤 혼이 들어가 있었을까 혼자서 구시렁거리며 익산을 떠났다. 친구는 그때 구시렁거렸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한다. 두 남자가 다시 익산역에 간다면 그때 그 이유를 이야기할 것이다. 석탑 모형물 앞에서 말이다.
1일 차 – 광주
광주역에 도착했다. 광주에 도착한 이유는 두 남자의 ‘야구’ 관람 때문이었다. 두 남자 모두 야구를 좋아한다. 친구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을, 그리고 나는 광주를 연고로 하는 팀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광주로 야구만 보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른 관광지는 방문하지 않았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야구장 근처로 걸어갔다. 야구장에 먹을 것이 빠질 수 없었으니 주변에 있는 치킨집을 검색했다. 프랜차이즈 치킨 보다 광주만의 치킨이 먹고 싶었다.
어린 꼬마들이 평상 위에서 놀고 있었다. 대문에는 ‘치킨 안쪽’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치킨을 주문하고 평상에 앉아 치킨을 기다렸다. 갈색 봉투에 가득 담긴 치킨을 받고 야구장을 향해 갔다. 닭발까지 튀겨주는 광주식 치킨이었다. 닭발을 원래 튀겨주는 것인가?, 양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의문을 뒤로하고 야구장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먹어본 치킨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사랑하는 일을 경험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 응원소리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나는 평생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초록빛으로 물든 잔디, 빨간 유니폼의 물결, 웅장한 함성소리가 나를 뒤덮었다. 다른 관광지를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온전히 오후 시간을 야구장에 투자했다. 친구에게 미안했다. 친구는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고마웠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고마웠다.
2일 차 – 순천
광주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순천으로 갔다. 두 남자의 국내여행 중 최고의 관광지로 손에 꼽히는 관광지, 순천이다. 순천은 압도적인 자연을 품고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 순천만 습지, 낙안읍성, 선암사 등 대한민국에서 아름다운 관광지를 나열하면 순위권에 있는 명소가 있는 곳이 순천이다.
두 남자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둘러보고 순천만 습지로 이동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습지에 도착했다. 8월의 습지는 더웠지만 동시에 시원했다. 몸은 뜨거웠지만 초록색의 갈대는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습지를 돌아다니는 새, 게, 망둥어는 각자만의 소리로 자연을 찬미하는 교향곡을 펼쳤다. 일렁이는 태양이 저물면서 울음소리도 천천히 줄어들었다. 자연의 신비였던 것일까?
습지 위에 있는 데크길을 걸으며 두 남자는 지난날을 회고했다. 전주, 익산, 광주 그리고 오늘 순천까지 2일 동안 4개 지역을 돌았다. 힘든 점은 없는지, 앞으로의 여행은 또 어디로 갈지 또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갈대밭을 누볐다. 습지를 나와 숙소로 돌아가 다음날 부산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3일 차 – 부산
순천에서 부산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1대 다니는 목포발 부전행 무궁화 열차를 타야 한다. 3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코스였다. 하동, 진주, 창원을 지나 낙동강변을 따라 부산에 도착했다.
부전역 앞에는 부전역 역전시장이 있다. 시장에 들어간 두 남자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느꼈다. 경상도식 사투리가 두 남자의 귀를 두드렸다. 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 아닌 오해를 마음속에 품고 돼지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든든한 국밥으로 속을 달래고 버스를 탔다. 두 남자는 버스에서 멀미했다. 꾸불꾸불하고 경사가 있는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부산 버스, 모두가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두 남자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처음이었다 버스에서 사람이 튕겨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버스를 타고 도착 한 곳은 송정 해수욕장이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해수욕장에 몸을 담그지는 못했다. 눈앞에 있는 투명하고 파란색의 바다는 두 남자의 멀미를 해결해 주는데 충분했다. 바닷물에 손도 담가보고 멀리 있는 수평선을 쳐다봤다. 그동안 3일 동안 달려온 여행의 날들이 떠올랐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부산역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부산역을 가득 채웠다. 모두 KTX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KTX를 타지 못한다. ITX-새마을호에 몸을 맡겨 서울로 올라갔다.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눈을 감고 떠 보니 63 빌딩이 보였다. 열차는 한강 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꽉꽉 채운 차를 뒤로하고 용산역을 지나 서울역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고생했다는 문자를 끝으로 두 남자의 첫 뚜벅이 여행은 끝이 났다.
다음 이야기 : 2020년 두 번째 뚜벅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