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지만, 필요하긴 하니까.
시간이 갈수록 싫은 사람의 유형이 더 다양해지는 것 같다. 넓어져야 할 식견은 오히려 좁아지고, 좁아졌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마음은 점점 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제는 어릴 때처럼 대놓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이용한다’는 느낌으로 사는 거지. 그 이용이 상대에게 손해를 입히고 내게 이득을 취하는 행동이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 중 눈에 띄는 단점보다 가벼운 웃음이 더 많다면, 그냥 한 시기를 함께 보내는 것. 물론 대다수의 어른들이 그렇게 서로를 이용하며 산다. 희생하며 쓰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순간 함께할 사람, 술 한잔할 사람,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할 때다. 외로운 순간은 누구에게든 찾아오니까. 하나라도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귀한 세상이다.
우리는 자신과도 맞지 않은 점이 많고, 버거울 때가 너무 잦아 혐오 속의 시간에서 살아갈 때도 있는데, 어떻게 타인이 내 마음에 쏙 들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서로 어떤 한 구간이 맞다면 유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는 이 사람과 인생의 무언가를 나눌 관계는 아니니까, 거슬리더라도 애정이 없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걸 상대가 자신이 꽤 괜찮다고 믿으며 선을 넘어올 때가 있다. 사람을 거른다며, 다른 사람 단점을 지적하며 자신은 까다롭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훅 하고 거리를 두고 싶다.
나는 나의 취약한 부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이 무던한 사람을 동경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리스펙트 같은 것. 하지만 저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보면 뜨억 하며, 사람은 역시 양면이 있다는 걸 체감한다. 그래도 저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점을 가지고 있으니,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자며, 그렇게 관계를 이어간다. 중요한 건 생각만 해야 한다는 것.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읊지 않는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싫어하는 것은 늘어나지만, 모든 걸 표현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의 뻔뻔한 무모함이 부럽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 옆에 있을 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엄격한 잣대와 기대가 따른다. 아직 이것까지는 놓지 못하니까. 그게 사랑이라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