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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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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존재가 지워지는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알지 못함이 곧 순수함이라면, 너와 나의 시작은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인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끝내 같은 지점에 머무르는 일이 가능할까.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마음은 끝내 가능성을 찾았다.


나는 무지했기에 나를 잃었고, 그래서 너를 갈구했다. 잃어버린 나를 너로 채우려 했으니 어떻게 단 한 순간이라도 충만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너를 잃고서야 다시 내가 되었다. 이제는 나를 지우면서 순수함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탐할 수 없을 것이다. 너에게서 안정감만을 바라던 나는, 결국 나이기를 포기했던 나였다는 사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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