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
돈은 좋다. 사고 싶은 걸 못 사고,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가고 싶은 데 못 가는 건 언제나 아쉽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어떤 한 사람의 존재가 그 모든 욕구를 대신할 만큼 크다면, 그 사람 곁에 있는 것만으로 살아갈 힘이 생긴다. 그럴 땐 신기하게도 어수선했던 욕구들이 하나둘 정리된다. 진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불필요한 욕심은 조용히 사라지고, 정말 필요한 것만 남는다. 결국 나 자신만 남게 된다. 비록 나의 진짜 민낯이 추하더라도.
단칸방에서만 있어도 너만 있으면 돼라는 투박한 말이 아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함께일 때도, 어떤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고서(사기를 당했건, 사고를 당했건), 치열하게 살되 집을 조금 더 우선시하며 따뜻한 사람과 함께 있는, 서로의 직장과 적당히 가까운 아늑한 집. 예쁜 걸 보다가도 높은 가격표에 놀라 조금 더 낮은 단계로 고르며, ‘가성비가 좋아야 한다’며 웃을 수 있는, 초라하지 않고 서로 행복한 그런 정도.
물론 돈이 많은 것? 최고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완전히 거세된 사랑과 압도적인 돈보다는 사랑과 가성비 있는 삶이 나에겐 더 적절하다. 이러한 마음들은 스스로의 우선순위를 깨닫게 하고, 자신을 비워준다. 다른 소소한 욕구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만큼 힘이 있다는 의미다.
진짜 사랑이란, 결국 나를 나로 남게 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며, 온전히 나를 남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가장 잘 자고, 식욕이 넘치듯, 편안함은 나를 모든 면에서 건강하게, 이롭게 만든다.
비싼 소파에서 혼자 누워 쉬는 게 최고인 사람도 있지만, 나에게 편안함이란 함께 누워 있는 소파 위에서 ‘이 정도면 엄청 싸게 샀다’, ‘정말 잘 골랐다’라며 어린아이처럼 몇 시간이고 소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느낌, 손끝으로 스미는 설렘과 소소한 행복, 그 모든 것이 나를 완전히 쉬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는 편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