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일
어느 것에도 몰두하기 어렵다던 내가, 너에 대한 몰두를 거두고 돌린 화두는 일이었다. 너무나 기쁘게도, 원하던 것처럼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걸 아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서도 너를 놓았다. 이렇게 6개월도 안 걸리는 일이었구나. 혼자가 되는 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 아니구나. 또 하나를 배웠다는 멍청하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이제는 워라밸이 아닌, 정말 ‘일’을 해보려 한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하고 싶음에서 나오는 의지다. 그런데 너의 존재로 둘러싸여 있던 이 회사를 하나씩 정리하는 중인데, 문득 몇 달 전처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가 있다. 혹시나 하고, 무서워서 보지 못했던 찢어진 공책들을 모두 파쇄했다. 다 보진 못했지만, 익숙한 너의 글씨체가 보일 때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주책맞은 행동을 할 것만 같다.
너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선택했던 회사.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 중에도 전화로 이어지던 싸움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전부였던 이 회사를, 너를 보고 싶어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던 내가 이제는 네가 바라던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며 떠나려 한다. 넌 지금의 내 모습을 꽤나 좋아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네가 아니다.
너는 나의 전부였으니까,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리고 네가 떠났으니, 이제야 비로소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게 찢어진 우리라서, 지금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