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 더 얼스 part.1

투명 페트병을 반납하면 종량제 봉투가 된다.

by 별방구

티끌 모아 태산

재작년까지 나는 페트병 생수를 사서 마셨다. 생수를 사서 마시면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된다는 문제도 있지만, 가장 표면적인 문제는 페트병 쓰레기였다. 하루에 2리터짜리 생수를 하나씩만 마신다고 해도 7일이면 7개, 한 달 30일이면 최소 28개가 나온다. 외출용으로 마신 500ml 생수병까지 합치면 며칠 사이 금방 플라스틱 분리수거 함이 가득 찼다. 빈 생수병의 라벨을 분리하고, 힘껏 쭈그러뜨린 후 모아 버리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 많은 페트병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빈도가 높아질 때쯤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투명 페트병을 모아서 근처 주민센터에 반납하면 종량제 봉투로 바꿔준다는 정보였다. 매일 생수를 사 마시고, 또 모아두던 내게는 가뭄에 소나기 같은 소식이었다. 페트병 20개 당 종량제봉투 10l짜리 한 장, 하루 반납량은 1인당 최대 페트병 100개 -> 봉투 5개로 제한되며, 일주일에 딱 정해진 하루만 접수가 가능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우선 모아둔 페트병을 냅다 꺼내서 세어보기 시작했다. 개수를 다 세어보니 정확히 42개가 들어 있었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1개 더 넣은 41개를 봉투에 담아 잘 두었다가 며칠 뒤 그 하루, 목요일에 맞춰 곧장 페트병을 싸들고 달려갔다.


마침 주민센터가 집 근처라 큰 고민이나 시간 맞출 필요도 없어 곧장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페트병을 들고 주민센터에 방문하자 페트병 반납하는 곳이 안보였다. 분명 미리 전화로 확인도 했었는데, 관련된 글자나 안내가 전혀 보이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직원분께 여쭤보니 친절하게 확인을 해주셨다. 알고 보니 하필이면 이날 페트병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 분이 휴무이셨던 것이다. 다른 직원분께서 조금 당황하시다가 허겁지겁 페트병은 그냥 입구에 두고, 명부를 작성하라고 하신 뒤 확인 후 내게 종량제 봉투를 쥐여주셨다. 그렇게 첫 페트병 교환식은 다소 얼결에 성사되었다. 나로 인해 배출된 쓰레기가 새로운 쓰레기를 담을 봉투로 탈바꿈되어 돌아오니 묘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페트병 41개를 모아 반납한 덕에 조금은 가볍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할 수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사이 열심히 모은 페트병을 또다시 봉투에 담아 주민센터에 방문했다. 지난번에 갔을 때 숫자를 세지 않으시길래 이번엔 그냥 딱 40개만 담아서 갔다. 여전히 따로 어떤 안내문은 없어 그냥 사무실을 향해 조심스럽게 페트병 반납하려고요… 소심한 목소리로 말씀을 드리니 다행히도 담당자분이 계셔서 곧바로 나와주셨다. 직원 분께서는 날카롭게 나를 한번 보시곤 입구 쪽 구석으로 나를 데리고 가시고, 곧장 목장갑을 손에 착용하셨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앉은뱅이 바퀴 의자에 앉으시곤 빠른 속도로 페트병의 개수를 세기 시작하셨다. 순간 나의 마음속엔 작은 불안함이 일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페트병이 혹시라도 나의 착오로 39개일까 봐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제저녁 분명 페트병의 개수를 2번이나 다시 세고 신중히 담았음에도 괜스레 불안이 피어오른 것이다. 괜히 1개를 덜 가져와서 봉투를 못 받으면 어쩌나, 그럼 봉투를 한 개만 받고 나머지 19개는 다시 집으로 가져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봉투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이 우유부단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초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페트병의 개수는 정확히 40개가 맞았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종량제 봉투 2장.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생필품이기에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면 다 돈이다. 이렇게 하나씩 아끼는 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생각을 하는 나는 살림꾼… 이라며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나를 너무 억척스럽게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가다가 한동안 일정이 바빠져 페트병을 반납하러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페트병 반납 체계에는 변화가 생겨났다. 오랜만에 시간이 생겨 그동안 쌓인 페트병을 모아서 주민센터에 간 날이었다. 사무실 문 앞 입구에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책상과 젊은 남자분이 앉아계셨다. 처음 페트병을 반납하러 왔을 땐 명부에 세명 정도의 이름이 적혀있다가, 두 번째엔 다섯 명쯤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참여자가 열명 이상으로 늘어 좀 더 편리한 진행을 위해 페트병 반납 상주 담당자와 테이블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는 페트병의 개수는 세지 않고, 이전처럼 명부에 이름과 페트병 개수를 적으면 종량제 봉투를 주셨다. 그리고 페트병을 담은 봉투는 저기 뒷마당에 던져놓고 가라고 다소 시니컬하게 얘기하셨다. 좀 더 간편하고, 빠르게 교환이 가능했으나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개수를 지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오지랖 섞인 걱정도 조금 들었다. 그러나 여긴 한국이다. 오히려 스스로 더 예민하게 개수와 규칙을 지키는 것이 한국인의 미덕.이라는 생각을 하며, 걱정은 날려버리고 가볍게 룰루랄라 주민센터를 걸어 나왔다.


나의 투명 페트병 교환은 지구 살리기 프로젝트에 동참했다기보다는 나의 집념적인 생활력을 풀어낸 이야기에 더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는 현대사회인만큼 알짜배기 정보를 쏙쏙 파고드는 약간의 집념괴 노력이 필요한 요즘인 것 같다. 때론 너무 구두쇠 혹은 억척어멈 같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껴서 맛난 커피 한잔 사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으니 이 작은 소행이 다른 이들에게도 소소한 동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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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