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내 인생의 동반자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하라

by 별방구

요즘 현대인의 고질병이자 인생의 동반자는 바로 갑작스레 찾아오는 ‘우울감’이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자, 긍정적인 몸과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조로 늘 웃음을 머금은 채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런 내게 대학생이 되면서 차츰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23살 때 인생을 지배하는 우울감이란 무엇인지를 차츰 알게 되었다.


열심히 달리다 갑자기 멈추면

그제야 비로소 찾아오는 가쁜 숨

바쁘게 일상을 보낼 땐 오히려 나를 살필 여유가 없어 우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저 힘들다는 말을 할 뿐, 힘들어도 해야지 뭐 어떡해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게 된다. 진짜 문제는 그 ’바쁨‘이 끝남과 동시에 혹은 줄어들며 찾아온다.


바쁘다 빠바 현대사회에 치여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나는 보이지 않게 이미 갈갈이 상처가 나버렸고, 여유가 생김과 동시에 보이지 않던 상처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상처의 아우성은 쓰나미처럼 몰려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킨다.


그래도 만약 나를 지탱해 줄 건강한 루틴, 이를 테면 매일 하는 운동이나 취미가 있다면 그나마 회복이 빠를 수 있다. 거대한 쓰나미가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진입로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거대한 쓰나미는 결국 그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있는 그대로 휩쓸려 가게 만들어 버리고야 만다.


우울이 날 지배할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마음의 우울감은 곧 무기력함으로 변해 더 강력한 힘으로 나를 지배하는데, 이럴 땐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일종의 멍한 상태로 하루, 이틀, 한 달을 보내게 되는데 이걸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래도 회복의 기미가 있다.


이렇게 거대한 우울감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냥 시간을 보냈다. 보냈다기보단 흘려버렸다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보내는 시간조차도 나를 한심하게 만드는 것 같아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에너지가 없음에 뭘 할 순 없으나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낼 순 없으니 뭐라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것이 매일 한편에서 두 편의 영화를 눈앞에 틀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영화를 본 것이다. 보통은 그냥 흘러가는 영화를 관찰하는 식이었으나 때때로 마음이 조금 움직일 수 있는 날엔 몰입을 하고, 여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지자 어느 날엔 그 여운이 너무나 강렬해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아주 가끔 어떤 날엔 그 영화 속 장면처럼 밖을 좀 걷고 싶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흘렀을 때쯤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서 영화를 보는 날보다 바깥에 나가 걷는 날이 차츰 더 많아졌다.


일평생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많이 시달렸는데, 그냥 완전히 무기력해지고 나서야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진 못해 영화를 보긴 했으니, 완전히 놓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지나자 학창 시절에 날 지탱하던 강렬한 열정은 사그라들어버렸다. 다시 지피고 싶어도 쉽사리 지펴지지 않는 어떤 소멸의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열정은 사그라들었으나 뭔가를 해야 한다는 그 강박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마음은 항상 쪼들려있다. 쪼들리다 못해 쪼그라들어있다고 해야 할까.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그저 뭔가를 하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조금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그걸 하고, 또 하다 보면 작은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또 불안해지면 책을 읽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너무 거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이대론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자기 전 칭찬 일기를 써보기도 했다. 나를 다독이며 돌아볼 수 있는 칭찬일기, 감사일기가 참 좋다고는 하지만 막상 잘 내키지는 않던 나였다. 그러나 역시 다들 하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알 수 없는 초조함과 두근거림, 나의 불안과 불면을 달래기 위해 시도한 칭찬일기는 시작한 지 3일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나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너무 한심한 하루를 보낸 것은 아닌가, 그냥 나 자체가 너무 한심한가 하는 마음의 불안과 생각을 칭찬 일기가 조금은 잠재워주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하루동안 내가 한 작고 사소한 일들을 하나씩 꼬집어 적다 보니 절로 나를 돌아보고, 하루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전에 쓰던 일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알 수 없는 마음의 콩닥임을 가라앉히는 일종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냥 대부분의 날들은 그냥 이 우울감과 불안감을 내 일부라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떨쳐버리려고 해도 떨쳐지지 않으니 뭐 별 수 있나.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다. 어깨에 작은 아령 하나씩 이고 살아간다고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니까.


때론 이 불안이 나를 움직이게도 하고,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니까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마음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났을 때의 상쾌함, 글을 쓰고 났을 때의 후련함, 눈여겨보던 옷을 샀을 때의 설렘을 찾아 더 자주 내게 ‘당근’을 주려고 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고, 더 좋을 수 있게 하는 게 나를 웃게 만드는 가장 지속가능한 긍정 루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우울을 부르는 불안을 느끼고, 또 종종 거대하게 찾아오곤 하지만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 감정들마저도 나니까 잘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기 위해 그만큼 더 긍정적인 생각의 문을 톡톡 두드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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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