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상으로 빠져든 순간

그 시절, 내게 책 읽기는 도피였다.

by 별방구

책과 나의 거리는 15cm

20대 책방지기가 된 내가 본격적으로 책의 맛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다. 특히나 한창 입시로 바쁠 고등학교 2, 3학년 때 나는 갑자기 독서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의 독서 원동력은 공부하기 싫은데, 공부해야 한다는 그 강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공부는 하기 싫지만, 완전히 놀고 싶지도 않은 마음으로 나는 책을 계속 계속 읽으며 공부보단 훨씬 재밌는 독서에 빠지게 되었다.


그 덕에 내 삶은 많은 부분 풍부해졌고, 또 문학적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7살 때부터 스트레스를 주었던 나의 느린 독서 속도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느렸던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그것이 독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깨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소설에 빠지지 않았다면 난 지금 책방지기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인생의 나침반은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책의 맛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을 때, 공부는 하기 싫지만 마냥 놀고 싶지도 않을 때, 어쩐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막막할 때마다 책이라는 숲으로 도망을 치게 되었다.


물론 햇살이 너무 좋은 주말 오후의 독서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책을 충만하게 느끼는 시간들도 함께 했다. 내 조용한 친구의 이름은 ‘책 읽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차츰 독서는 내 안에 자리를 잡고 그 방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잡념을 퇴치해주는 마법의 묘약

종종 생각이 너무 많을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책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애정하는 카테고리는 소설이기에 사실 책을 읽음으로써 어떤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그러나 무수한 문장 속에서 그 이야기를 한 줄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가 된 듯 덜 복잡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으면 책 속 문장 너머로 자꾸만 어떤 생각 덩어리들이 뭉게뭉게 나를 헤집고 지나가는데, 그 약간의 멍하고도 골똘한 상태가 마치 러너스 하이처럼 나를 중독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런 독서의 매력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나의 독서 사랑은 어떤 멋들어진 이유나 드라마틱한 계기가 아닌 단순히 공부로부터의 도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뭐든 하기만 하면 시작이 반이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듯 책도 마찬가지다. 누구든 그 시간 속에서 만나게 될 미지의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또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내가 만난 책 속 문장과 이야기들이 전해준 세상은 분명 그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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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