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풀잎에서 잡초까지, 아이의 계절을 기다리며
폭풍우 같은 시간 속에서도, 풀잎은 봄을 준비합니다.
아직 단단하지 않아도, 아직 아물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아주 조용히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도,
부모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다시 피어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람 앞의 풀잎
겨우겨우 땅을 밀어낸 한 줄기 풀잎.
떨리는 숨결로 바람에 몸을 맡기며, 비로소 따스함을 찾아 나섭니다.
바람이 온기를 더할수록,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상처 입었던 줄기에도 서서히 녹색의 희망이 깃듭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구름 너머로 몰려오는 폭풍우의 그림자를.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줄기,
아직 아물지 못한 마음.
연둣빛 잎새는 흔들리며, 간절히 묻습니다.
“이번에도… 견뎌낼 수 있을까.”
멈춰버린 시간 앞에서
휴학과 군 입대로 흘러간 2년.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대학 생활 속,
아빠는 또다시 말했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군생활이 더 힘들다며.
지금 먼저 입대부터 하고, 그다음에 대학을 끝내라.”
저는 애써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학교부터 끝내고 가야 해.
지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가 더 어려워져.”
하지만 제 말은 끝내 닿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고집은 벽처럼 단단했고,
아이의 의지와 꿈은 그 앞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결국,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학계를 냈습니다.
닫힌 마음을 다시 열기까지
집으로 돌아왔지만, 곧장 입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달, 두 달, 다섯 달… 시간은 흘러도 소식은 없었습니다.
서서히 열리던 마음은 다시 굳게 닫혀만 갔습니다.
그 시간이 반복될까 두려웠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다시 꺼져버릴까,
그게 가장 아팠습니다.
“이번엔 육군으로 가보자.”
아이와 마주 앉아 결론을 내렸고,
지원했지만, 끝없는 기다림만 이어졌습니다.
마음이 닫히지 않도록, 함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다녔습니다.
풀잎이 흙 속에서 더 깊이 뿌리내리듯,
아이의 마음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이 하고 싶니?
가고 싶은 곳은 있어?”
묻고 또 물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지 않게 하려는
저의 작은 몸부림이었습니다.
일본으로도 보내봤지만,
앞서 달려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은
점점 깊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고집이 만든 멈춤의 시간.
그 시간은 아이를 더 깊은 고요 속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선택 앞의 침묵
그러던 어느 날, 육군 입영 통보가 도착했습니다.
“이제야 다행이다.”
3개월 뒤 입대라는 소식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입대를 두 달 앞둔 어느 날,
해군에서도 통보가 왔습니다.
육군보다 한 달 빠른 날짜였습니다.
“엄마… 해군은 가기 싫어요.”
아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아빠의 뜻대로 결정되었습니다.
“미안하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제 말에, 아이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진해로
입대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아이도 모든 마음을 정리한 듯,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해군 갈게요.”
그날부터 우리는 하나씩 준비해 나갔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시 진해로 향하는 길.
차창 너머 풍경은 전과 같았지만,
이번 길 위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간절히,
마음속으로만 되뇌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주기만을.”
잡초는 그렇게 피어난다
그날의 풀잎은, 이제 잡초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여리고, 아직은 흔들리지만
그 안엔 이미 봄을 피워낼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풀잎은 잡초가 되어
바람에도, 눈에도 꺾이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 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잡초는 자라라는 허락을 받은 적도 없고,
꽃처럼 환영받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았습니다.
햇살 없이도,
빗물 없이도,
밟히고 꺾여도,
잡초는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그 아이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폭풍우 같은 오늘이 지나면,
그 아이의 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저는
그 봄을 향해, 끝없이, 간절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