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대신 몰입을 선택한 어느 아침의 기록.
어릴 때부터 나는 정리가 되어야만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아이였다.
방이 어질러져 있으면,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꼭 청소부터 해야 했다.
그래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치우는 시간이 더 길었고,
어떤 날은 정리를 마치면 하루가 다 지나가기도 했다.
‘정돈된 공간에서만 집중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른들이 늘 그랬다.
“방 정리가 잘 되어야 공부도 잘 된다”라고.
하지만 나는 공부보다는 정리하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정돈이 된 책상 위와 방 안을 둘러보면
어딘지 모를 심리적 안도감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집안 곳곳에 이사 온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박스는 덜 닫혀 있고, 자리를 잡지 못한 짐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5년 전이라면 이 모습이 눈에 거슬려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몸이 힘들어도 정리가 끝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했고,
결국 해야 할 일은 미루기 일쑤였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몰입’이라는 감각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처음엔 몰입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초집중 상태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여러 책을 읽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됐다.
몰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일상의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걸.
잠깐의 틈,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한 곳에 마음을 두는 경험이
내 생각과 에너지를 이전보다 깊고 선명하게 바꿔 놓았다.
요즘의 나는 책상 위가 어지럽더라도 괜찮다.
노트북 하나 둘 자리만 있으면 된다.
펜, 메모지, 안경, 노트가 흩어져 있어도 상관없다.
그 상태로 글을 쓰고, 생각을 꺼내는 연습을 한다.
예전엔 어수선한 환경이 나를 방해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배경으로 녹아 사라진다.
몰입의 순간은 몸으로 느껴진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주변의 소음이 멀어지고 시간의 흐름이 희미해진다.
책상 위의 먼지도, 창밖의 자동차 소리도 사라진다.
남는 건 오직 나와 내가 마주한 한 가지뿐이다.
그 고요한 순간이, 참 좋다.
특히 아침의 몰입은 더 특별하다.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로 환기시키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연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마음을 온전히 기울이면
그날의 하루가 놀라울 만큼 달라진다.
요즘은 책을 읽는 시간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에 더 깊이 빠져든다.
읽는다는 건 남의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라면,
쓰는 건 내 생각의 길을 직접 만들어가는 일이다.
한순간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문장의 결이 끊기고,
생각의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몰입하는 연습을 하게 됐다.
그건 단순히 글쓰기의 기술이 아니라,
삶을 정돈해 가는 태도다.
몰입은 거창한 결과를 만들어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진심을 다해 어떤 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순간이 나를 성장시키고, 내 안을 단단하게 채운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마치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 있던 것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집중한 후의 개운함,
일을 마쳤을 때의 잔잔한 성취감,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었구나'라는 확신.
그 신비로운 감각이
오늘도 나를 이 아침의 몰입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