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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만 8km, 퇴사 후 첫 명절

by 진심의 온도

7일간의 긴 명절 연휴 중, 어느새 절반이 지나갔다.


퇴사 후 맞이한 첫 명절은 이상하게도 전보다 더 분주했다.
연휴의 난이도는 남편과 함께하느냐, 혼자 버티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월요일 아침, 어머니와 동생 가족, 그리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춘천으로 향했다.
유은이는 며칠 전부터 레고랜드 노래를 부르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나도 잠시, 아이와 함께할 여행의 설렘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비와 짐의 무게로 시작된 ‘육아 하드모드’였다.


용산역에서 ITX를 타고 12시에 춘천에 도착했을 때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춘천역에 내리자마자 부슬비가 내렸고,
우비를 입히고 짐을 맡기며 하루의 체력을 반쯤 쓴 기분이었다.


레고랜드 곳곳을 돌며 놀이기구를 타고, 솜사탕을 사주고,
분수대에서 젖은 옷을 화장실에서 갈아입히는 동안 진이 빠져갔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우리는 모래놀이장에 몸을 피했다.


그날 저녁, 비에 젖은 우비와 우산, 아이 손, 짐가방을 들고
명동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데까지 한참이 걸렸다.
겨우 들어간 만두국집의 뜨끈한 국물에서
그제야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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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외할머니 댁 방에 일곱 명이 누워 잤다.
대포 같은 코골이와 아이의 잠꼬대 사이로
새벽 세 번쯤 깼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엔 다시 산소로 향했다.
우비를 입고, 아이 손을 잡고, 시골길을 20분 넘게 걸었다.
유은이는 조카 시윤이와 밤을 주우며 신나게 걸었다.


그모습을 보며,

‘이제 내 삶의 중심은 일보다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 맞은 우비를 벗고, 닭갈비 골목의 좁은 식당에서 열한 명이 옹기종기 앉았다.
아이를 챙기느라 밥맛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이 없었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자,
남편이 반갑게 맞이했다.


유은이를 보는 그의 눈에선 꿀이 떨어질 듯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고되고 다채로웠던 명절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남편없이 보내는 첫 명절과 나홀로 육아였지만,
나름 아이와 새롭고 다채로운 명절을 빈틈없이 보내는 것은 확실하다고.


퇴사 후의 첫 명절,

나는 일보다 관계의 무게를,
피로보다 삶의 온기를 조금 더 배운 것 같다.


남은 연휴는, 그렇게 내 리듬대로 천천히 마무리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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