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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호비 유치원 놀이 하자

'아빠 양관식'은 인정할게

by 수하

"수 틀리면 빠꾸"로 유명한 금명이 아빠.


최근 여러 세대의 마음을 울린 이 드라마 속에서, 내 마음에 깊이 와닿은 장면이 하나 있다.


금명이 결혼식 날, 신부 입장을 앞두고 금명이는 아빠에게 결혼식날 우는 신부는 딱 질색이라며 아예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오히려 아빠는 담담하게 또 한 번 "수 틀리면 빠꾸"를 외치고, 금명이는 짜증 난다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이어 신부 입장하는 장면에서 금명이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오열하며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얼굴엔 눈물로 화장이 번졌지만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였다.


나는 이 장면이 꽤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면 열 번 중 열 번 운다. 삼십 년이 사흘같이 지나갔을 부모의 마음이 짐작되고, 그렇게 지극하던 부모를 떠나는 신부의 마음 또한 헤아려진다. 대부분의 신부들은 그날만큼은 복받치는 감정을 참아내고 웃으며 입장할 것이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 눈물을 참아내지 못한 채 오열하면서 입장하는 그 장면은, 그럼에도 차마 누를 수 없었던 아빠와 딸의 사무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는 어릴 적 아빠를 가장 좋아했다.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란 어린 내게 일에 바쁜 아빠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아빠는 늘 내가 잠든 뒤에야 퇴근하곤 했는데,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땅콩빵 냄새로 지난밤에도 아빠가 무사히 돌아왔음을 알아차렸다. 주말이면 TV 보던 아빠 곁에 바짝 붙어 얼굴을 바라보며 꼭 끌어안던 그 시간이 참 소중하고 좋았다.


그리고 지금, 내 아이도 아빠를 가장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좋아하고 아빠도 가장 좋아하는데 우리는 굳이 누가 더 좋냐고 묻지 않는다. 보통의 아이들은 엄마를 가장 좋아한다지만, 내 아이는 아빠도 사무치게 좋아한다는 사실이 나는 왠지 더 좋다.




나도 결혼한 지 10년이 넘다 보니, 가끔 결혼을 앞둔 지인들이 결혼 생활에 관해 물어볼 때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사람이 좋은 배우자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조언을 구한다. 정답은 없겠지만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아이에게 좋은 아빠일 것 같은 사람과 결혼해". 보통은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 좋은 아빠가 되는 것 같다고.


남편이 휴가인 날이면 나는 밀린 업무도 하고 조금 느슨하게 퇴근을 한다. 퇴근 후 문을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아빠와 종 치기 게임을 하며 웃고 있다. 엄마와 함께하는 보통의 평일에는 저녁 먹고, 영어 숙제하고, 책 좀 읽다가 무리하지 않고 일찍 잠드는 일과지만, 오늘은 영어 단어는 내일 외우겠노라며 아빠와 더 놀겠단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더 어릴 적부터 남편은 정말 기가 막히게 역할놀이에 최선을 다했다. 요즘도 그는 그때 아이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며 말한다. "아빠. 호비 유치원 놀이 하자! 오늘 아빠는 페로(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제외한 남은 캐릭터) 해". 오늘 뿐만 아니라 늘 페로는 아빠 몫이다. 아이는 아빠만은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유일한 세상인 걸 아는 듯하다.


얼마 전 아이의 운동회에 휴가를 낸 남편은 아이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평소 성격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학부모 대표 경기에 참여하고, 쉴 틈 없이 운동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이제 너희 아빠 누군지 우리 학교 아이들이 다 알 것 같아"라고 반 친구가 말했다며 좋아했다.


아이는 아빠에게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오목 두는 법도, 공기놀이도, 최근에는 장기 두는 법도 배웠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아이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내가 담당할 테니 당신이 놀이를 담당해라고 한다. 그만큼 남편은 언제나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진심으로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아이와 종일 자전거를 타고, 저녁엔 또 종 치기 게임을 한다. 열한 살인 아이는 여전히 핸드폰 게임보다 아빠와 노는 걸 더 좋아한다.


이 글을 쓰고 보니 분명한 건, 그는 '남편 양관식'은 아닐지 몰라도(나도 애순이는 아니기에), '아빠 양관식'만큼은 맞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장면들이 너무 그리워서, 미래의 결혼식장에서 가장 많이 울게 될 사람은 바로 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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