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내 지각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나는 매년 개근상을 받던 팀장이었다. 개근상은 1년 동안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어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시절 나는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함께 일하던 대부분의 구성원도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그 상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이백 명이 넘는 직원 중, 매년 수상자가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업무량과는 별개로, 나는 조직에서 근태를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꼭 직장이 아니더라도, 약속 시간에 늦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반갑지 않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서 멀어지곤 했다.
그런 내가, 전직을 하고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가며 다닌 직장에서 들은 말은 "다 좋은데, 지각이 잦네"였다. 태어나 처음 들어본 종류의 말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이를 유치원 셔틀에 태운 후, 전속력으로 뛰어 8시 10분 안쪽의 지하철을 타야만 9시 전에 출근 카드를 찍을 수 있었다. 셔틀버스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나는 죄인 같은 얼굴을 하고 동네 엄마에게 부탁하거나,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달려야 했다. 좀처럼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내가, 숨을 헐떡이며 온 얼굴과 머리가 젖은 채 들어야 했던 말이 "다 좋은데, 지각이 잦네"라니.
선물 같은 내 아이는 유아기에도 잘 먹고 잘 자는 덕분에 잦은 병치레도 거의 없었고, 갑작스럽게 아파 엄마를 당황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다. 유치원에서 개근상을 받았을 땐, 아이의 건강함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이나 휴가는 미리 계획해서 출석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 개근상은 결국 아이가 갑작스럽게 아파 등원하지 못한 날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 말의 의미를, 어린아이를 키운 엄마들은 단번에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셔틀버스가 늦은 탓에 내가 아이 엄마라서 지각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감내해야 한다니(사실은 그렇게 직접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자책했다) 억울했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건강하고 예쁜 아이는 내 지각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 왔던 '시간 약속'이라는 가치. 그러나 이제는 그보다 더 소중하고, 나의 우선순위가 된 아이를 돌보는 일. 그렇게 한동안은 그 가치를 지키지 못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서러웠다. 그 마음을 설명할 길은, '서럽다'는 말밖에 없다.
거기에 퇴근까지 칼같이 해야 하니,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환영받지 못하는 근로자였을까. 우스갯소리로, 숨 쉴 틈도 없이 일해도 결국 '지각하고 칼퇴하는 직원'이 된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는, 내 일은 누구보다 꼼꼼히 마무리했고, 주변에 부담을 주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적 여유가 없어 예전처럼 밤낮으로 남을 도울 수도 없었다. 한국 사회의 조직과 동료는, 그런 사람을 반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많은 워킹맘들이 이러한 이유로 '워킹'을 중도 포기한다. 그럼에도 내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던 건, 시절마다 비중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내 삶에 일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지금 이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보자'는 다짐 덕분이었다. 돌아보면 시절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 기준을 따라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남모를 서러움도 많았다. 다행히 손도 빨랐고, 마음도 다잡은 덕분에 그 시간을 조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이겨낸 것은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지금은 출근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도착하지만, 나는 이러한 종류의 싸움을 지금도 적지 않게 하고 있다. 이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속한 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도울 수는 없을까 늘 소극적으로 고민한다.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삶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 되뇌었다.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면 선택이 쉬워진다. 결국 모든 것은 뜻을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