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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빨간 쫄바지 입을 수 있어?
태양왕 루이 14세

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by 이윤설





여러분이라면 딱 달라붙는 빨간 쫄바지를 입고 거리를 당당히 걸을 수 있나요?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빨간 쫄바지를 입는다는 건 단순한 패션을 넘어, 엄청난 자신감과 존재감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옷을 당당히 입고 자신의 다리를 내보였던 인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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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 루이 14세 1638년~1715년




바로 '짐이 곧 국가다( L’État, c’est moi) 라고 선언했던 태양왕 루이 14세!


루이 14세는 자기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7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중 상당수는 늘 같은 포즈를 하고 있습니다. 쫄바지를 입은 한 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드러낸 자세입니다.


그는 왜 굳이 다리를 강조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발레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발레를 열정적으로 배웠던 그는 단련된 다리 근육에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가장 강점 있는 신체 부위를 드러내며 매력을 극대화 했고, 나아가 당시 사회에서 남성적인 힘을 상징하던 다리를 드러냄으로서 권력과 위엄을 시각적으로 과시했습니다.

루이 14세는 잘 단련된 다리 근육만큼 불꽃처럼 타오르는 레드 컬러를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의 옷차림 곳곳에는 붉은 술과, 깃털 장식들로 치장되었고, 인테리어에도 레드컬러를 다양하게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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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레드컬러로 포인트를 한 귀족들

좌) Louis Charles de Levis, Pierre Mignard, 1675sa. 1650

중) La Grande Mademoiselle, Anne Marie Louise d'Orleans Duchesse de Montpensier by Louis Ferdinand Elle, 1640

우) Antoine Nompar de Caumont, duc de Lauzun by Alexis Simon Belle, 1700



왕이 레드를 좋아하니 귀족 즉 권력자들도 앞다투어 모자와 리본, 깃털장식, 허리띠 등에 선명한 붉은 색으로 치장하여, 왕을 할현할 때마다 레드컬러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레드는 곧 왕의 색이자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림5.jpg 빨간색 염료 채취과정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의 레드 염료는 극도로 희귀하고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선명한 빨간색 1g을 얻기 위해서는 선인장을 먹고 사는 연지벌레(코치닐) 암컷 7만 마리 가량을 말려 빻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드는 오직 돈과 권력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색이였습니다.



1704220311248342.jpg 레드카펫의 레드의 의미



오늘날에도 레드는 여전히 권력과 위엄을 상징합니다. 화려한 행사에 꼭 들어가는 레드카펫은 특별한 초대와 존경을 의미하며,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밟는 붉은 길은 여전히 힘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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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어진, 영조 어진


레드는 동양에서도 권력의 색이었습니다. 조선의 왕들이 입던 곤룡포는 대부분 붉은색이었고 이는 힘과 생명력,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물론 서양에서처럼 재료의 희소성이 한 이유였지만, 조선의 역사적, 사상적 배경 또한 크게 작용했습니다. 음양오행사상에 따르면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북쪽은 흑색, 남쪽은 적색, 중앙은 황색을 뜻합니다. 황제는 세상의 중심에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로 '황색'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사대주의에 얽매였던 조선은 황색을 황제의 전유물로 여겨 사용할 수 없었고, 대신 붉은색을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대한제국을 세운 고종만이 중국과 대등한 황제로서 유일하게 황색 곤룡포를 입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선 왕들은 붉은 곤룡포로 권위와 위엄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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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는 권력과 위엄의 색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에너지를 불어넣는 색이기도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빨간색은 사람의 심박수를 높이고, 체온을 상승시켜 사람에게 활력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부족할 때, 혹은 중요한 결심히 필요할 때 레드컬러는 용기를 북돋우는 강렬한 힘이 됩니다.

저 역시도 첫 강의 시연을 할 때 본능적으로 강렬한 레드컬러 자켓을 집어 들었습니다. 누군가 앞에 서야한다는 사실에 두근거리는 심장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 강렬한 색이 내 안의 용기를 끌어 올려 주었습니다.


루이 14세에게 레드는 권력의 상징이었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레드는 용기의 색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작은 레드 포인트 하나쯤,

아니면 마음속의 '빨간 쫄바지' 로 자신감을 입어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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