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아마도 포근한 병아리, 해바라기, 환한 햇살, 아이들의 웃음 같은 따뜻하고 귀여운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노란색은 흔히 긍정과 희망을 상징하며, 몽글몽글한 상상과 따스한 기운을 불러옵니다.
역사적으로도 동양에서 노란색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가장 높이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닮았기에 황제의 색으로 사용되었고, 부귀와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잔치나 의례 같은 좋은 일에도 자주 쓰였으며, 금빛 장식과 어우러져 귀한 색으로 여겨졌습니다. 서양에서도 노란 리본은 기다림과 희망을 뜻하며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의 노란색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배신과 오염, 타락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철학자 괴테(Goethe)는 노란색의 이중성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노란색은 즐겁고 유쾌하며 고귀한 색이지만, 동시에 극도로 오염되기 쉽다. 고급 옷감에 염색되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질 낮은 천에 물들이면
활력을 잃고 불쾌한 색으로 변한다.
중세 유럽에서 노란색은 ‘쉽게 더럽혀지는 색’으로 여겨졌습니다. 밝고 선명한 색이 아니라 탁하고 흐린 노란색은 곧 간통과 매춘, 타락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당시 계급별 복식 규정에 따라 귀족은 값비싼 원단으로 선명한 색을 입을 수 있었지만, 가난한 계층은 질 낮은 옷감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난한 계층의 하나인 매춘부들은 질이 좋지 않은 옷감을 사용하였기에 탁한 노란색은 곧 매춘부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상은 예술작품에도 반영되어 간음, 간통을 저지른 여성에게 탁한 노란색 옷을 입혀서 간통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좌) Egon Schiele, The Scornful Woman, 1910
중) Henri de Toulouse-Lautrec, La Clownesse Cha-U-Ka-O im Moulin Rouge, 1895
우) Johannes Vermeer, The Procuress, 1656
사회적 인식은 예술 작품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는 매춘부를 모델로 삼아 누런 피부로 표현했는데 그림 속 누런 피부는 단순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씌운 ‘더럽혀짐’과 ‘정숙하지 않음’을 상징했습니다. 노란색은 또한 눈에 잘 띄는 색이었기에, 단순히 타락의 상징에 머물지 않고 사회가 강제로 씌운 낙인의 색이 되었습니다. 멀리서도 쉽게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법이나 관습 속에서 매춘부나 죄인에게 의도적으로 입히는 색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의 작품 속 물랭루즈의 매춘부와 무희들의 드레스나 장식에 쓰인 노란색 역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계를 드러내는 표식의 색이었습니다.
좌) Giotto, The Arrest of Christ, 1304~306
우) Dieric Bouts, The Arrest of Christ with kiss of Judas and ear of Malchus
영어권에서 쓰이는 ‘Yellow dog’라는 표현은 비열하고 배신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 뿌리는 기독교 전승에 있습니다. 예수를 팔아넘긴 제자 유다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성화에서 자 노란 망토를 걸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노란색을 거짓과 탐욕 같은 부정적인 것과 연결했기 때문에, 화가들은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란 옷을 입혔습니다. 이렇게 노란색은 '배신자의 색'으로 굳어졌습니다.
14세기 화가 조토(Giotto) 역시 유다의 망토를 선명한 노란빛으로 표했습니다. 예수에게 다가가 배신의 입맞춤을 하는 장면에서, 보는 이들이 단번에 유다를 알아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후 기독교 문화권 전반에서 노란색은 배신과 비열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런 인식은 지금도 언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yellow라는 단어는 단순히 ‘노란색’을 넘어, 겁 많고, 질투 많고, 비열한 성격 등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기도 합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언론을 말하는 ‘Yellow journalism ’ 질투와 샘이 가득한 표정을 ‘Yellow look’,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비하할 때, ‘Yellow monkey’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노란색은 생명을 품은 따뜻한 빛이면서도, 동시에 배신과 매춘, 오염 등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합니다. 밝고 순수해 보이지만 가장 쉽게 변질되고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색, 그것이 바로 노란색의 아이러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