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괜히 그 색이 예뻐 보이고, 자꾸 시선이 머문다?
어쩌면 ‘지름신’이 오셨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에서는 보라색을 '자기 보상의 컬러(Self-reward color)’라고 부릅니다.
'이 정도면 나에게 선물 하나쯤 해도 괜찮아.'
그런 마음이 커질 때, 우리는 보라색에 끌린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보라색은 이성과 절제의 색인 파랑, 그리고 욕망과 감정의 색인 빨강이 섞여 만들어진 색입니다.
하고 싶은 욕망(빨간색)과 절제와 이성(파란색)이 만나는 지점, 그 미묘한 긴장 속에서 탄생한 색이 보라입니다.그래서 보라색은 ‘하고 싶지만, 합리화가 필요한 순간’을 상징합니다.
우리 마음의 양면을 가장 솔직하게 닮은 색, 그게 보라색인 것입니다.
보라색은 ‘사치의 컬러’이자, '지배자의 색'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보라색은 권력자의 색이었습니다. ‘퍼푸라(Purpura)’라 불린 뿔고둥에서 염료를 추출해 만들었는데, 단 1g의 염료를 얻기 위해 약 8,000~12,000마리의 고둥이 필요했습니다.
이 염료는 뿔고둥의 체액을 꺼내 햇빛에 말리고 발효시키며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만큼 귀했기에, 오직 왕과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서』에도 “보라색은 지상에서 가장 고가의 색상”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틴의 속담에서,
“왕의 보라색 옷은 가난한 자의 눈물로 짜여 있다.” 라고 일컬어지듯, 보라색은 고귀함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사치와 불평등의 색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배 돛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게 했습니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돛은 그녀의 부와 미모, 그리고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세로 오면, 보라색은 세속의 권력을 넘어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과 추기경, 고위 성직자들만이 보라색 의복을 착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뜻하는 푸른색과 인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이 섞여, ‘신과 인간을 잇는 중재자의 색’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회, 겸손, 영적 권위의 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보라(Purple)는 라틴어 Purpura(뿔고둥)에서, 바이올렛(Violet)은 제비꽃 Viola에서 유래했습니다.
퍼플이 피와 노동, 권력의 색이라면, 바이올렛은 자연의 겸손한 아름다움을 닮은 색이었습니다.
'보라'라는 영역아래에서 두 단어가 공존하듯, 보라색은 언제나 권력과 신비, 절제와 사치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보라색은 여전히 ‘럭셔리’함의 상징입니다. 샤넬, 디올, 불가리, 까르띠에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보라색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돈이 아니라 품격으로 빛나는 색,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왕족은 피가 아니라, 보라색을 품위 있게 소화하는 사람이다.”
Elizabeth Taylor
이 말처럼, 보라색은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라기보다 보라색 자체가 어울림으로써 선택받은 이들의 고귀함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의미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보라색은 ‘나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품격의 색’,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사치의 색이 되었습니다.
헐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는 ‘보라색 눈동자’로 전 세계를 매혹시켰습니다.
사실 그녀의 눈은 회청색이었지만, 당시 영화 조명과 필름의 색감이 만들어낸 보랏빛 착시가 그녀를 신비롭고 우아한 존재로 각인시켰습니다.
위에 이미 언급하였듯 보라색은 근본적으로 사치와 권력, 신비를 상징하는 색이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의 결핍을 감싸주는 색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만큼 노력했고, 이제는 나를 위로할 자격이 있어.”
보라색이 매혹적으로 다가 올 때, 그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다시 확인하려는 마음’ 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요즘, 보라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시나요?
그렇다면 지름신이 아니라, 당신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당신 자신이 찾아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