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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라는 이름의 행복,
장밋빛 인생

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by 이윤설



그가 나를 품에 안고,

나지막이 속삭일 때면 인생이 온통 장밋빛이 된답니다.



Édith Piaf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의 대표곡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의 한 구절입니다.

라비앙 로즈는 프랑스어로 '장밋빛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가사를 몰라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향기처럼 번져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필 ‘장밋빛 인생’일까요?


장미의 색은 붉은 장미, 검은 장미, 보라 장미까지 다양합니다.

저는 ‘장밋빛 인생’이라고 하면 짙은 붉은색보다는 몽글몽글한 연한 핑크빛이 먼저 떠오릅니다.

핑크색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줍니다.


여러분은 어떤 색이 떠오르시나요?





행복의 결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평온한 일상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설레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행복을 색으로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핑크색을 생각합니다.

고난보다는 달콤함을, 현실보다는 꿈을 닮은 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 자연스레 “핑크 공주”라 부릅니다.

‘블루 공주’나 ‘그린 공주’라 부르진 않죠.

그 말 안에는 이미 ‘사랑스럽고 다정한 존재’라는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좌) 금발이 너무해 2001 (우) 바비 2023



영화 속 핑크색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 엘 우즈(Elle Woods)는 온통 핑크로 둘러싸인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허영과 과시, 백치미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핑크색은 긍정과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냉소적인 곳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

그게 바로 ‘핑크다운 자신감’이 아닐까요?


미국의 사회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벽하려고 애쓰는 대신,
불완전한 자신을 사랑하라.
그 순간 진정한 용기가 시작된다.




이 말은 영화 바비(Barbie)의 핑크색과 닮아 있습니다.

바비는 ‘바비랜드(Barbie Land)’라는 완벽한 핑크빛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반짝이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이런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영화 속 바비는 더 이상 단순한 인형이 아닙니다.

그녀는 느끼고, 고민하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영화 바비의 핑크색은 ‘완벽함의 색’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의 색으로 다가옵니다.

완벽을 향해 애쓰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용기입니다.




(좌)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 1767 (우) Jeff Koon, Balloon Dog



핑크색은 예술 속에서도 사랑, 욕망, 행복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의 언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그네>, 1767는 로코코 시대의 쾌락과 낭만을 상징합니다. 한 여인이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그네를 타며 미소 짓고, 그 아래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 순간의 핑크색은 사랑의 설렘을 비추지만, 곧 사라질 것 같은 환상의 느낌도 줍니다.


키치 미술의 대표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Balloon Dog> 속 핑크색은 현대사회의 ‘소비와 허영,그리고 욕망의 공허함’을 상징합니다. 반짝이는 금속 풍선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쿤스는 이 작품을 통해 ‘값비싼 완벽함’의 허상을 말합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담지 못한 욕망의 풍선. 그의 핑크빛은 유희적이고 달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과잉된 낙관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쿤스의 핑크는 ‘행복의 모조품’이자,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가짜 환상의 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화려함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비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지요.



Pierre Bonnard, Nude in Bathroom, 1932



또 다른 작품 속 핑크색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는 일상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욕실 속 여인>, 연작에는 따뜻한 햇살과 핑크빛 벽, 물결에 부딪혀 번지는 피부의 부드러운 빛이 함께 머뭅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자 그의 아내 마르트는 목욕하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물 위에 비친 핑크빛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자 서로의 하루가 조용히 스며드는 사랑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보나르에게 핑크는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조용히 보듬는 잔잔한 사랑의 색이었습니다.






어쩌면 행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화려하고 빛나는 순간보다,

작지만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처럼요.


행복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 안에 진심이 있다면 이미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오늘을 믿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장밋빛 인생’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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