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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오렌지색

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by 이윤설




햇살이 유난히 부드러운 오후,

누군가의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잠이 든 순간이 있나요?

소란스러운 공간인데도 마음이 편안하고,

공기마저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 말이에요.



Frederic Leighton, Flaming June, 1895




프레더릭 르이트온(Frederic Leighton)의 타오르는 6월(Flaming June)을 보면 그 달콤한 순간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오렌지빛 드레스를 입고 잠든 여인은 마치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안심한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녀의 곤히 잠든 얼굴에는 ‘믿음’과 ‘안도감’이 묻어납니다.

편안한 관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마음.


색채이론가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은 『그의 저서 The Art of Color』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렌지색은 태양의 따뜻함과 인간의 생기를 동시에 지닌 색이다.”




노란색이 “나를 봐주세요”라는 인정의 욕구라면, 붉은색은 “내가 다가갈게요”라는 표현의 욕구입니다.

이 두 감정의 색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색, 바로 오렌지 색입니다. 그래서 오렌지색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용기’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도 오렌지색은 관계의 색으로 해석됩니다.

따뜻한 색조(특히 레드·오렌지 계열)는 파랑이나 회색보다 감정을 열고 대화의 에너지를 높인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Elliot & Maier, Color-in-Context Theory, 2012)

그래서 오렌지색은 ‘마음을 여는 색’이라 불립니다. 따뜻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다정하지만 과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혀주는 색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렌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향을 지닙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고, 주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평소보다 오렌지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거나 좋아질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거나, 따뜻한 관계가 그리워진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마음 한쪽이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고 싶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오렌지색에 끌립니다.



Nicolas Fouché, Pomona, 1700



예술작품에서도 오렌지는 이런 ‘관계의 색’으로 표현됩니다.

니콜라 푸셰(Nicolas Fouché)가 그린, 로마 신화 속 과일과 풍요의 여신 '포모나(Pomona)를 그린 작품입니다. ‘포모나’라는 이름은 라틴어 pomus(과일)에서 유래했으며, 풍요와 성숙, 나눔의 상징으로 그려졌습니다. 푸셰는 포모나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인 옷을 입혀 친근하고 생명력 넘치는 여신의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그 색감은 잘 익은 과일처럼 풍성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순간의 기쁨을 떠올리게 합니다.
화면을 감싸는 오렌지빛은 마치 '관계가 익어가는 시간의 색’,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렌지색이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Egon Schiele, Self-Portrait in an Orange Jacket, 1911~1913



에곤 쉴레(Egon Schiele)는 여러 점의 오렌지색 재킷을 입은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오렌지색은 포모나의 따뜻한 색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1912년, 미성년 모델을 그렸다는 이유로 투옥된 그는 비난과 고립 속에서 불안과 외로움을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강렬한 오렌지 재킷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과의 단절,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쉴레의 오렌지색은 ‘관계를 잃은 외로움’‘다시 관계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하는 색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가까이 있고 싶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죠.


오렌지색은 그런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색입니다.
지친 하루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기억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오렌지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한 걸음 좁혀주는 색,

혼자 있어도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색입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

오늘 당신의 오렌지색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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