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핑크의 반란, 이건 단순한 핑크가 아니다. 쇼킹이다.

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by 이윤설



[출처 : 언플래쉬]



처음 “쇼킹 핑크(Shocking Pink)”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눈을 사로잡은 건 ‘쇼킹(Shocking)’이라는 단어였습니다.


‘핑크인데 왜 쇼킹일까?’,

‘무슨 색이길래 충격적이라는 말을 썼을까?’


하지만 실제 색을 보면 단번에 이해가 됩니다.

이 핑크는 단순히 귀엽고 부드러운 핑크가 아닙니다.


보기만 해도 시선을 붙잡고,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려는 듯한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색.

어둠 속에서도 혼자 빛날 것 같은 존재.

순진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거침없는 말괄량이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색.


그 컬러가 바로 ‘쇼킹 핑크’입니다.



(좌) Elsa Schiaparelli (우) Shocking Pink



이 색을 단순한 핑크가 아닌, ‘쇼킹 핑크(Shocking Pink)’라는 강렬한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입니다.

1930년대를 풍미한 그녀는, 당대 가장 혁신적인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코코 샤넬이 유일하게 질투했다고 알려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샤넬이 클래식한 우아함과 실용성을 이야기했다면, 스키아파렐리는 초현실주의와 대담함으로 패션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1937년 자신의 향수 <Shocking de Schiaparelli> 패키지에 강렬한 핑크색을 사용하며 ‘쇼킹 핑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핑크가 ‘부드러운 여성성'의 상징에서 벗어나 도전과 선언, 존재감의 색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저서 『 Shocking Life』(1954)에서 '쇼킹 핑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I gave to pink, the nerve of the red, a neon pink, an unreal pink.”
나는 핑크에 레드의 긴장감과 네온빛 같은 강렬함, 그리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담았다


스키아파렐리가 붙인 ‘쇼킹 핑크’라는 이름은 핑크를 속삭이는 색에서, 당당히 외치는 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색을 활용하며, 쇼킹 핑크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는 상징적은 컬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색이 대중문화 속에서 강렬하게 각인된 순간 중 하나는 1953년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입니다.

영화 속 마릴린 먼로는 쇼킹 핑크 드레스를 입고, 유명한 곡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를 부릅니다. 그 장면에서 그녀는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남성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노래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에게 최고의 친구'라는 가사는 물질적 욕망을 넘어, 여성의 선택권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그녀가 입은 쇼킹 핑크 드레스는 그저 아름다운 의상이 아니라, 당당한 매력과 자기 주도권을 시각적으로 과시한 장치였습니다.






앤디워홀 _마를린 먼로 시리즈



쇼킹 핑크는 예술계에서도 강렬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색채로 사용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마릴린 몬로’ 연작입니다.

워홀은 마릴린의 초상화에 쇼킹 핑크(또는 핫 핑크)를 입혀, 마릴린이 실제 인간이 아닌 대중이 소비하는 이미지, 즉 완전히 상품화된 스타로 보는 시각을 강조했습니다.

강렬한 색은 원본 흑백 사진과는 거리감을 만들며, 그녀의 ‘실체’를 흐리고, 대중들이 만든 ‘페르소나’만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되었습니다.


앤디 워홀이 쇼킹 핑크를 통해 화려한 표면 아래 숨겨진 소비 문화의 폭력성을 드러냈다면, 키스 해링(Keith Haring)은 이 색을 사회적 침묵을 깨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좌) 키스해링, 침묵 = 죽음(Silence = Death) (우) 유대인 홀로코스트 당시 분홍식 삼각형 표식




1980년대 후반, 해링은 ‘침묵 = 죽음(Silence = Death)’이라는 문구와 함께

선명한 분홍색 삼각형이 들어간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 핑크 삼각형은 원래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동성애자 남성을 낙인찍던 표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링과 LGBTQ+ 운동가들은 이 상징을 되찾아 저항, 가시성, 연대의 의미를 담은 기호로 재해석했습니다.

쇼킹 핑크는 이처럼 억압의 상징을 저항과 선언의 상징으로 전복시킨 색입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색이 아니라, 억눌린 존재들이 ‘여기 있다’고 외치기 위해 선택한 색이었습니다.



이렇듯 쇼킹 핑크는 단순한 '핑크'가 아닙니다.

그것은 ‘꾸미기 위한 색’이 아니라, 스스로를 잊지 않게 만드는 색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강렬한 색에 끌리는 순간은,


사실은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나답게 존재하고 싶다'는

마음 속 깊은곳으로부터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Dare to be different.”
다르게 할 용기를 가져라.
— 엘사 스키아파렐리




쇼킹 핑크는 눈에 띄고자 하는 색이 아닙니다.

남들과 같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자신을 선택하겠다는 태도 자체를 상징하는 색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색을 선택했나요?


그 색은 누군가의 시선 때문인가요,


아니면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인가요?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에메랄드그린, 내 낙원은 아직 공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