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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은 시도가 만들어낸 보랏빛 혁신, 모브컬러

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by 이윤설



[출처 : 언플래쉬]




여러분은 '실수'를 해본 적이 있나요?


중요한 날 옷에 커피를 흘린다든지,

비 오는 날 우산을 깜빡하고 나와 비를 맞는다든지.

실수는 누구에게나 불쑥 찾아옵니다.

그 순간엔 당황스럽고 아쉽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돌아보면

그 일 때문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거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길이 열리는 경우가 있죠.


저도 그래요.

강의 자료를 만들다 파일을 잘못 저장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했던 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풍성한 스토리가 만들어진 적도 있습니다.


포스트 잇이나 (푸른곰팡이에서 발견된) 페니실린처럼

다른 목적의 과정속에서 실수로 발견된 수 많은 지식과 발견들은

우리들의 일상에 다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욱 (mauve) 꽃




여러분은 혹시 '모브'라는 색을 알고 계신가요?

모브(Mauve)는 프랑스어로 아욱(mauve)’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 꽃은 은은한 회보랏빛을 띠고 있는데,

이 색의 발견자 퍼킨은 자신이 합성한 색이 아욱의 꽃과 닮아 ‘모브’라고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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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14살 때 퍼킨 (우) 퍼킨 모브컬러 샘플



‘모브(Mauve)’라는 컬러도 이러한 실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1856년 영국 런던. 열여덟 살의 윌리엄 헨리 퍼킨(William Henry Perkin)은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quinine)’을 인공 합성하려는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퀴닌은 자연에서 극소량만 얻을 수 있었기에,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시도는 대담한 혁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험은 번번이 실패했고, 유리관에는 언제나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실험관 바닥에 남은 은은한 보랏빛 침전물을 발견합니다.

실패의 흔적 같았지만 묘하게 마음이 끌리던 색.

퍼킨은 그 물질을 다시 분석했고, 그 순간 인류 최초의 합성염료 ‘모브(Mauve)컬러’가 탄생했습니다.

이 염료는 세탁해도 쉽게 빠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었고 대량 생산까지 가능했습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귀족과 왕실만이 누릴 수 있던 ‘보라색의 특권’은 처음으로 평범한 시민들에게까지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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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가 등장한 지 수십 년이 지나면서, 1890년대 유럽은 한동안 연보랏빛 열기로 뒤덮입니다.

패션, 향수, 식품, 인쇄, 미술까지 모든 산업이 모브를 앞다투어 사용했고, 사람들은 이 시대를 아예 ‘모브 시기(The Mauve Decade)’라고 부르게 됩니다.


모브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사회 분위기와 감각, 나아가 시대정신까지 바꿔 놓은 문화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특히 여성용 보라색 원단은 큰 인기를 끌었고, 나폴레옹 3세의 아내인 유제니 황후가 모브색상 드레스를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 이 트렌드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유제니 황후는 이 색상이 자신의 눈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드레스들을 모브색으로 염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빅토리아 여왕 역시 1862년 왕립박람회에 퍼킨의 모브색으로 염색한 화려한 드레스를 착용하고 등장했습니다. 이 두 여왕의 영향력 덕분에 모브 컬러는 단순한 한 시즌의 유행이 아니라,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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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우)『All the Year Round』






모브 열풍의 절정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인물 중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잡지 『All the Year Round』에 모브 컬러의 열풍을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As I look out of my window, the apotheosis of Perkin’s purple seems at hand—purple hands wave from open carriages—purple hands shake each other at doors—purple hands threaten each other from opposite sides of the street; purple—striped gowns cram barouches, jam up cabs, throng streamers, fill railway stations: all flying countryward, like so many migrating birds of purple Paradise."


창밖을 바라보니,
마치 퍼킨의 보라색이 절정에 이른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차 창문에서는 보랏빛 손들이 흔들리고,
문 앞에서는 서로 보랏빛 손을 맞잡는다.
거리 양쪽에서는 사람들이 보랏빛 손짓으로 위협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보랏빛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마차를 가득 메우고,
택시를 빽빽하게 채우며, 증기선과 기차역까지 붐비게 만든다.
모두가 마치 보랏빛 낙원으로 날아가는 철새처럼,
시골을 향해 쏟아져 나가고 있다.




디킨스의 묘사처럼, 사람들은 마치 ‘보라색 낙원의 철새’처럼 모브로 물든 패션을 따라 이동했고

도시 전체는 연보랏빛 열기로 채워졌습니다.



출처 : Artsper



모브컬러는 곧 인상파 화가들의 팔레트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색이 됩니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보라색은 자연 안료로 얻기 어렵고 값까지 비싸, 화가들의 작품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색이었습니다.

그러나 1856년 윌리엄 퍼킨의 합성염료 ‘모브(ine)’ 발견은 이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보라색 계열 안료가 처음으로 대량 생산·저가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보라색은 ‘특권의 색’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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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클로드 모네 (중) 수련 (우) 워털루 다리, 햇빛 효과 (Waterloo Bridge, Sunlight Effect) 1903




이 변화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색채 팔레트를 제공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있습니다.

모네는 보라색이 검정보다 그림자·공기·대기의 미묘한 떨림을 훨씬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회화 전반에 그 신념이 깊게 반영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 have finally discovered the true color of the atmosphere. It is violet. The open air is violet. I found it!”
“나는 마침내 대기의 진정한 색을 발견했다. 보라색이야.”

퍼킨의 모브를 시작으로 등장한 다양한 합성 바이올렛 안료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빛·공기·그림자를 보랏빛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를 제공했습니다. 그전까지 어둠은 검정·갈색 같은 무채색으로만 표현됐지만, 인상주의 이후의 그림에서는 그림자가 바이올렛·모브·라일락 색조로 대체되며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미감이 형성되었습니다.

모브컬러의 발견이 있었기에 예술가들의 팔레트는 새롭게 열렸고,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까지 달라졌습니다. 실험실의 우연에서 태어난 색이 인상주의의 혁신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mark-konig-OBPLW16Lp_4-unsplash.jpg [출처 : 언플래쉬 ]



모브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멈추지 않은 시도였습니다.


시도는 성공을 보장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결과 없이 끝나는 실패가 훨씬 더 많죠.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이 성공보다는 우연히 발견된 결과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뜻밖의 발견도 결국, 퍼킨처럼 시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과 실패속에서 발생한 일이었다는 점을요.


과학을 넘어 패션을 물들이고,

예술가들의 시선을 바꾸고,

한 시대의 감성을 상징한 색, 모브.


이 특별한 색 역시 ‘시도’와 '우연' 사이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자고요.

시도하면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는 반드시 나오니까요.



생각만 해오던 일이 있다면, 우리 함께 한 번 시작해볼까요?

그 시도가 당신을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도 있고,

어쩌면 모브처럼 새로운 색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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