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스코틀랜드가 나를 불렀다
나는 일을 잘했다. 일을 좋아했고 일이 재미있었다. 직장에서는 나보고 저 사람 혼자서 저걸 다 해, 뭐든지 다 해결해, 라고 했다. 남들이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면 신이 났다. 나는 밤에도 낮에도, 휴일에도 휴가 중에도, 자다가도 연락이 오면 일어나서 일을 했다. 우리 회사는 24시간 돌아가는 중이니 문제는 항상 발생했다. 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일은 점점 늘어났다. 그것도 어느 수위까지는 쳐내는 맛이 있었다. 그래도 나 말고 한 사람 정도는 내 일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부사수를 요청했다. 부사수에게 내가 아는 것을 다 가르쳐 놓으면 나도 맘 편히 장기간 휴가도 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사수는 몇 달간 내 일을 배우더니 좀 써먹을 만하니까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나는 다시 혼자 일하게 되었다. 그 회사에서 나는 입사부터 퇴사까지 내 일을 나 혼자만 했다.
팀장님도 나한테 고생한다 하고, 현장에서도 나에게 고맙다 하고, 본사에서도 저분 없으면 안 돌아간다고 하길래,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는 매우 오만하고 거만하고 교만했다.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 거들먹거린다고 뒤에서 욕했을 테지만, 어쨌든 내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나를 찾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전화가 울리면 도망가고 싶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젠 나도 밤에 자다가 전화받는 일이 지겨워졌다. 이젠 좀 알아서들 하지 또 전화해서 똑같은 거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을 어디에도 말할 데가 없었다. 왜냐면 다들 일이 많아서 힘들어했고, 직원들은 일 좀 익힐 만하면 다른 부서나 해외 사무실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당시 나 말고도 남아 있던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다들 일에 허덕였다. 그래서 나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어느 날 나는 인천공항 입국장을 내려다보며 난간에 기대어, 평소에 일 관련해서만 연락하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힐 때 도움을 청하는, 다른 회사의 매니저님께 전화를 했다.
그분에게 전화한 이유는, 그분도 딱 나처럼 살고 있어서였다. 예전에 잠깐 프로젝트로 같이 일해본 바로는 그분도 5분에 한 번씩 여기저기에서 전화 오고, 이게 안 돼요, 저게 안 돼요, 지금 비행기 나가야 되는데 이게 자꾸 오류 나요... 하면 그분은 조금은 재수 없는 말투로, 하지만 ‘나는 담당 아니니까 다른 데 전화해서 물어보라'며 끊어버리는 일 없이 투덜투덜하면서 해결해 주시곤 했다. 정말 멋진 분이셨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어인 일이냐고 물으시는 그분한테 말했다. 저 이제 여기저기서 전화받는 게 너무 지긋지긋해요, 처음에는 재밌어서 했는데, 이젠 어떻게 이걸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말하다 보니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들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닌 그분에게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힘들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분은 웃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한때는 지겹고 짜증 나서 전화 오면 막 화내고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들한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하며 감사하게 여기면서 한다…라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때의 그분 나이에 근접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일하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그분의 그 말씀 덕분에 그 후 약 일 년 정도는 더 버틴 것 같다.
일 년 후, 진짜로 번아웃이 왔다. 아주 간단한 일도 못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간단한 이메일 하나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다. 가장 오래 같이 일한 팀장님은 해외로 가버리시고, 다음에 오신, 정말 인품이 훌륭하신 팀장님은 사장하고 대차게 싸우더니 퇴사해 버리셨다. 그 후임으로 온 인격이 형편없는 팀장은 내가 멍하니 앉아있기만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물론 어느 윗사람이라도 그런 것을 참아주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때 일은 차마 글로 쓰기도 힘드니 건너뛰겠다.
나는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직장에 들어왔는데, 여길 나갈 생각을 하게 되다니. 나는 심지어 이제 이직하기에도 나이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출근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직장인들 퇴사한단 소리는 다들 입에 달고 다니지만 진짜 퇴사밖에 답이 없을 정도로 힘들 때에는 오히려 퇴사하고 싶다는 말도 안 나왔다. 그걸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괴로워서.
그래서 나는 날씨도 좋던 늦봄의 어느 날, 회사를 떠났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화단에 핀 팬지, 페튜니아, 패랭이꽃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절대 다시는, 이 근처에도 오지 않으리라고.
놀랍게도, 아직도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
대X항공 광고 카피 갖다 쓰려니 좀 기분이 나쁘지만, 정말로 스코틀랜드가 나를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불렀다'. 나는 퇴사 시점 기준 16년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반년 정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학생이었다. 에딘버러에서 어학연수를 빙자한 놀자탱자 중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정말 좋은 곳이었고 아직도 내 정신적인 고향이다. 좋은 곳이 그렇게 많은데 학생 신분이라 돈이 없어서 많이 가보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생각하며 지도만 마음에 담아 놓고 한국에 돌아왔다.
퇴사를 결심할 무렵, 나는 구글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스코틀랜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나는 원래 지도 보는 걸 좋아한다. 낯선 지명과 산, 강, 호수 이름 등을 보면서 여긴 어떤 곳인지 상상하는 게 즐겁다. 그날도 스코틀랜드 지도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곳들, 가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 못 가봤던 그 장소들은 다 그대로 있을까? 지금 가면,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땐 돈도 없고 영어도 못 했지만, 이젠 직장 다니면서 돈도 벌었고, 일하면서 맨날 쓰다 보니 영어도 그때보다 늘었고, 해외 출장도 많이 다녀서 여행 능력도 레벨업 되었다. 이젠 가면 정말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눈앞에 스코틀랜드가 펼쳐졌다. 이젠 거기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회사는 근처에만 가도 이미 숨이 안 쉬어지는데,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U자 골짜기와 바람이 너무 세서 나무 한 그루도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섬, 비가 죽죽 내리는 석조 건물 사이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안에서는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는 가야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서라도 가야만 했다. 돌아와서 평생 백수로 사는 한이 있어도 그곳에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