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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6월

03


대학생들의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기말고사는 곧 종강을, 방학을 의미한다. 이것은 평일 공강 시간 혹은 수업을 끝마치고 서점을 찾던 학생들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대학 근처 서점의 슬픔.


종강이라니, 종강이라니……

옆집 카페 사장님과 여름방학 보릿고개를 어떻게 잘 이겨내야 하는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사실 딱히 방도는 없다. 그냥 학생들이 없으므로. 대신 서점이라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무언갈 해야 한다는 것 정도. 여름방학 특집으로 꼬맹이들 독서 모임이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했다.


시험을 끝마치고 책방에 온 다람쥐 같은 학생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에타 게시글에 첫 번째 글을 시작으로 서점과 서점원을 칭찬하는 게시글이 3~4개 정도가 더 올라왔다는 것. 정말 기특한 학생들이다. 나는 그저 손녀를 보는 할미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 마음이 느껴졌나 보다. 할머니는 손녀들이 그저 귀엽고 귀여우니까 그런 건 자연스레 나오는 건데.

학생들은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옆집 카페 반려견 반이만큼이나 귀엽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질문하거나 까르르 웃으며 서로를 위한 책을 고르고 선물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쩜 다들 다람쥐 같고, 토끼 같고. 이십 대 초반 학생들의 상큼발랄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 서점의 큰 장점 중 하나다.


학생들과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예상외의 순수함이 있고, 부끄러움도 있고, 당돌함도 있다. 서점원이 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에 이렇게 많은 이십 대를 만날 기회는 전혀 없다. 곧 다가올 종강에 두려움을 떠는 서점원을 보며 학생들은 그래도 가끔 들리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마치 방학 때 시골에 놀러올게요, 하는 손녀들처럼.

다람쥐 같은 학생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서점원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들에게 멋진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십 년 후에 다시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서점의 기쁨.


동네에 아이 웃음소리가 사라져서 아쉽다는 어른들의 말을 나는 이제 이해한다. 학생들이 사라진다면 너어어어무 그리울 것 같다. 방학은 길다. 기나긴 방학의 공허함은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든다. 잃어버린 여름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상큼한 여름을 맞이하고 싶은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는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름의 책⟫, 토베 얀손 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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