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6월
01
오픈 전 서점을 준비하며 깨달은 것들.
하나, 혼자서는 어려운 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물며 손뼉 치는 일도 두 손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이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작성했지만,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둘, 인간은 기술을 익혀야 한다.
에어컨 청소 - 전문가 필요
어닝 제거 - 전문가 필요
벽 페인트 작업 - 전문가 필요
바닥 공사 - 전문가 필요
전문가를 찾는 일 역시 ‘코앞에 닥친 일들’ 리스트에 들어가 빼곡하게 쌓였다. 그중 전문가 없이 시도해 본 것이 있는데 바로 방충망 교체였다. 서점 정면 유리창 위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기존 방충망에 구멍도 몇 개 보이고, 먼지가 많이 쌓여있어 바꿀 필요가 있었다. 숨고(숨은고수) 같은 곳에 방충망 견적을 알아보니 가격이 비싸진 않았으나 작은 방충망 하나만 교체 의뢰를 하기엔 품이 더 들 것 같아 직접 도전해 봤다.
도와주러 온 친구 p와 나는 호기롭게 나섰으나 시작부터 난간에 부딪혔다. 방충망을 교체하려면 일단 창틀에서 빼내야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셀프로 방충망 교체를 했다는 블로그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양손으로 창틀을 잡고 힘을 줘서 아래로 내린 후 위쪽을 비스듬하게 빼내면 된다고 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p와 번갈아 가며 몇 번의 시도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린 창틀 하나도 못 뺀다’는 것이었다.
좌절감이 쌓였지만, 물러날 곳이 없어서 십 분 넘게 끙끙댔다. 그때 의문의 삼총사가 나타났다. 전문가 포스를 뽐낸 중년의 3인방은 옆집 카페에 온 손님이었는데 멀리서 우리의 모습을 보곤 참지 못해 다가온 것이었다.
그중 한 분은 십 분 전부터 보고 있었는데 창틀 하나를 못 빼냐며 답답함을 호소하셨다(우리보다 더 답답해하셨다). p와 나 대신 방충망 구조에 나선 전문가는 창틀을 잡고 요리조리 비틀다 단번에 분리에 성공했다. 와아. 우리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그러자 전문가는 창틀을 들고 사라졌는데 옆에 있던 분께서 저 사람이 전문가라며 기다려보라고 했다. 우리는 서점 창틀을 뺏긴 채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문가 사장님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예쁘게 단장을 마친 방충망과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나타나셨다. 방충망을 제자리에 끼워 넣으며 전문가 다운 완벽한 마무리를 선보였고, 츤데레 마냥 건넨 종이봉투 속엔 따뜻한 빵이 들어있었다. 와아.
우리는 또 한 번 감탄했다. 사장님은 젊은이들이 직접 해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며 직접 빵까지 사주며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방충망의 악몽에서 구출해 준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미완의 서점에 앉아 완벽하게 끼워진 방충망을 보며 빵을 먹었다. 빵은 굉장히 따뜻했으며 굉장히 맛있었다.
그 후 나는 사장님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사장님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내가 그분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많지 않았기에.
서점을 오픈하고 p가 서점에 놀러 왔다. p는 서점 오는 길에 방충망 전문가 사장님 가게에 들러 인사를 하고 왔다고 말하며(p의 놀라운 친화력) 서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말을 전해줬다. 사장님이 서점을 지날 때마다 서점 안에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라면서(ㅋㅋㅋ). 나보다 서점 걱정을 더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은혜를 갚을 날이 왔다. 옆집 카페에 놀러 온 사장님이 필요한 책이 있다며 의뢰하신 것. 기쁜 마음으로 책을 입고하고 며칠 후 사장님께 책을 선물했다. 사장님은 책값을 지급하려 지갑에서 현금을 꺼냈는데 나는 극구 말렸다. 이건 저의 마음이에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내가 이겼고, 츤데레 사장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돈이 많은가 봐.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여전히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그럼에도 인간은 역시 기술 하나쯤은 익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며.
2025년 6월 4일 마침내 은혜 갚은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손성경, 정영문 옮김,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