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5월
08
나의 데이터에 따르면 (물론 오픈 기준 한 달을 막 넘긴 시점이지만) 일단 수요일 목요일은 손님이 많이 없다. 다들 바쁜가 보다. 학생들은 수업 듣느라 바쁘고, 직장인은 일하느라 바쁘고 그렇다.
근데 오늘은 다르다. 그저 평범한 목요일 중 하루일 텐데 아침 출근길부터 지하철에 사람이 가득했고, 서점에도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여기서 ‘계속’이란 단어는 나의 평소 기준에서 바라본 기준이므로 사전적 의미와는 매우 다르다). 그래도 나의 목요일 중에서는 손님이 많이 오고 있는 편인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나의 데이터로 손님의 마음을 읽기란 여전히 부족하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만족할 만한 데이터가 나오려나? 올바른 데이터를 증명하기 위해 일단 그때까지 잘 살아남아 보기로.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첫 개시를 해준 귀여운 신입생. 친구 생일 선물로 책을 사겠다며 추천을 부탁했다. 생일 선물로 책이라니, 책이라니! MZ에게도 낭만이 있다. 친구는 영미문학을 좋아하는데 구체적인 취향을 잘 몰라서 시집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영미문학을 좋아하는 스무 살 학생을 위한 시집.
고민 끝에 여러 후보를 추천해 주었고, 아직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있는 신입생 손님은 시집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선택했다. 20명의 시인이 처음 시의 마음을 품었던 십 대를 추억하며 쓴 앤솔로지 형식의 시집인데 청소년이 읽어도 성인이 읽어도 좋다. 물론 그들에겐 불과 몇 달 전의 시절이겠지만, 오히려 애틋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북 커버로 예쁘게 포장하고, 5월의 책갈피에 생일 메시지를 권했는데 친구 이름으로 삼행시를 적은 게 정말 귀여웠다. (학생이 흔쾌히 허락해 줘서 사진까지 찍었다.)
강하게 자라나라
채현아
현우진처럼
교육학과 학생이라 그런지 현우진 강사로 삼행시를 마무리했다. 그치, 현우진처럼 자라면 강하겠지. 내가 현우진에서 웃었더니 현우진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학생들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자고로 부자는 저절로 유명해져서 모를 수가 없는 법이다. 아무튼 서점 이모는 선물 받은 친구 반응이 너무 궁금할 뿐이고. (채현 학생, 현우진처럼 강하게 자라고 있나요?)
어긋난 데이터 덕분에 풍족한 하루, 그럼에도 서점원의 기분을 결정하는 건 비단 매출만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다. 도넛을 나누는 기분으로, 우리는 책으로 마음을 나눈다. 자고로 서점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야 한다. 이렇게 어긋난 데이터를 고치고, 새로운 데이터를 모으며 기분 좋은 목요일을 맞이한다.
2025년 5월 29일 우리는 현우진처럼 강하게 자라날 필요가 있음을 느끼며
서점원의 문장과 책
: 내 나이 곧
어엿한 스물
어떻게 해야
세계 평화가 이루어질까
지구가 아름다워질까
생각하기에도 바쁘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중에서
⟪도넛을 나누는 기분⟫, 김소형 저 외 19명 지음, 창비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