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5월
06
오픈 초창기는 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한 번씩 들러주는 일 자체가 응원이 되었던 나날들. 지금은 동네 주민의 방문으로 서점에 활기가 돈다. 다들 오픈하기 전부터 궁금해하고 눈여겨 보고 있다가 한 번씩 방문해 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감사함의 연속.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학생들이다. 대학가 서점의 장점 중 하나는 이십 대 초반의 학생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점을 오픈하기 전에는 이십 대의 사람을 만날 일이 전혀 없어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어려웠다. 막연하게 들었던 생각은 조금 무섭다 정도였는데 서점을 찾는 학생들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곤 정말 의외의 귀여움을 발견할 때가 많아 즐겁다.
수줍게 책 추천을 부탁하는 모습이라든지, 친구 네 명이 방문해서 서로에게 책 선물을 해준다든지(블라인드 북처럼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고 싶어 해서 북 커버에 씌워 포장해 주었다), 서점 인스타그램에 내가 올린 게시글을 보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며 말하는 등 가지각색의 귀여움으로 웃음을 안겨준다.
서점 자체를 좋아해주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서점을 지켜주려는 움직임도 있다. 교내에도 서점이 없고, 학교 근처에도 서점이 귀해서 없어지면 안 된다, 라는 의지를 뿜어내며 이곳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아니, 서점의 생태를 이렇게 잘 알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 학생은 작고 소중한 동네서점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동네서점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손 뻗고 나서야 하는 게 맞다.
이 학생은 법대생으로 공모전에 낼 논문을 쓰다가 탈주해서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서점을 발견하곤 들어온 것이었다. 본인의 영혼이 탈탈 털려 지쳐있었는데도 오히려 나의 서점을 걱정해 주는 이 드넓은 마음. 학생은 책도 구입하고, 서점 내부 사진도 여러장 찍더니 학교 에타(에브리타임)에 게시글을 올려주겠다고 했다.
에타는 익명의 게시판으로 대나무숲 같은 건데 대학생 전용 앱으로 학교 인증을 거쳐야만 이용할 수 있는 앱이라 학생들만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었다. 당시 학생의 상황(논문 쓰다 힘들어서 집 밖을 나와 동네를 돌다 서점을 발견해서 잠시 현실을 잊고자 함)이 너무 안쓰럽고, 동시에 본인도 힘든 와중에 동네서점을 걱정해 주는 마음이 너무 기특했는데 나는 훗날 이 학생을 내 맘속 서점 앰배서더로 임명하기에 이른다.
그즈음 서점을 방문한 손님들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는지 궁금해 물어보곤 했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에타를 보고 왔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이다. 법대생이 에타에 올린 글이 핫게시물에 등극했고, 서점이 예쁘고 사장님이 친절하다(반대여도 좋을 듯)는 내용이 달려있어 와봤다고 했다. 에타의 화력이 이렇게 강력하다니. 젊은이들의 입소문은 에타를 통한다!
그 후로 나는 에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학생을 떠올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에타의 존재를 알리며 그 학생을 칭찬했고, 서점 앰배서더로 임명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의 언니는 서점 앰배서더 해서 그 학생에게 좋을 게 무엇이냐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명예를 얻은 것이니 좋지 않겠냐 했지만, 보통 브랜드 앰배서더는 협찬도 받고 돈도 받는다는 이야기에 할 말을 잃었다. 서점 앰배서더. 내가 줄 수 있는 건 명예(사실 이것이 과연 명예인지도 의문)와 서점 굳즈인 연필과 메모지 협찬뿐이지만, 우리의 팀워크를 확인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 그 학생에게 은혜를 갚을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공식적인 서점 앰배서더로 임명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이곳을 잘 키워나가기로 다짐해 본다. 일단 서점이 존재해야 함께 내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2025년 5월 22일 우리의 서점 앰배서더가 공모전에 당선되었길 바라며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처음으로 전철에서 맹인 안내견을 보았다. 발 옆에 작게 엎드린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는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한 오늘의 인생.
⟪오늘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이소담 옮김,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