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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이 동네에 책방이 생겨 정말 좋아요, 저도 좋아요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5월

04


비가 갠 일요일 정오의 책방, 서가 정리를 하는 동안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책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유리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책방이 정말 예뻐요. 이 동네에 책방이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투명한 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오는 봄날의 햇살과 정말 잘 어울렸다.


아, 기분 좋다.


모자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작게 웃음소리를 내기도 하며 그들만의 시간을 즐겼다. 카운터에서 바라보는 그 장면을 담아내고 싶은데 도통 사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아 한 번씩 곁눈질하는 것으로 만족했다(이때 이후로 책을 고르는 손님들의 모습을 몰래 찍고 있다, 서점에서 흔히 겪을 수 없는 스릴 넘치는 일 중 하나).


오랜 상의 끝에 그들이 선택한 책은 ⟪좀머씨 이야기⟫였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올리브 빛깔의 양장본인데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어 나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책이라 더욱 반가웠다. 아마도 아들이 읽게 되겠지. 뒤따라온 아들은 중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말간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했다. 외모 칭찬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일단 두 사람의 웃는 모습이 너무 닮았고 무엇보다 수줍음이 더해진 아들의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라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분의 분위기가 비슷해요. 로 시작해 참지 못하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에요. 라는 말을 건넸다. 아들은 발그레한 얼굴을 엄마 뒤로 숨겼고, 엄마는 아들이 쑥스러워서 말을 못 한다며 대신 웃어주었다.


한가로운 일요일 정오의 서점, 그 공간에 들어온 엄마와 아들의 모습은 최근 본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특히나 엄마 혹은 아빠 그리고 아들 혹은 딸이 함께 서점에 방문하는 경험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방에 들어와 책을 만지는 경험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고 싶은 거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책들이 있고, 책 안에 얼마나 많은 답이 있는지 스스로 깨칠 수 있는 첫걸음을 선사하는 것. 작은 공간이지만,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게 동네서점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좀머씨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날의 책방이 생각날 것 같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환한 미소와 수줍은 미소의 두 사람이 담긴 한 장면이.


2025년 5월 11일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 일요일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크 상페 글•그림, 김호영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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