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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눈썰미가 있는 삶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5월

05


나의 눈썰미란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것이다. 이목구비를 잘 따져보지 못해서 상대방의 전체적인 분위기만 보고 동글동글하군, 뾰족하군, 이런 단순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이미지를 저장해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얼굴이 아니고선 바로 캐치해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 내가 책방에 세 번째 방문한 학생을 알아봤다. 책을 한 권 구매할 때마다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듯 스탬프를 적립해 주는 시스템이 카드 단말기 프로그램에 있긴 하지만 이번엔 진짜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초창기 서점의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와준 학생이었는데 덕분에 이제는 그 학생의 전공과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썰미란 것이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놀랐던 어느 토요일,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이른 시간에 누군가 서점을 방문했다. 그녀는 차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방을 살피고 책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의 얼굴을 봤는데 음,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의 눈썰미는 여전히 신뢰가 없기에 마음을 다잡고 한 번 더 생각했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나의 눈썰미를 믿어보기로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슬아 작가님?


맞다. 그녀다.

서점원의 장점 하나, 내가 입고한 책의 저자를 만날 수도 있다.

일단 한층 성장한 나의 눈썰미를 칭찬하고, 틀릴 수 있을지언정 용감하게 물어본 나 자신을 칭찬한다. 서점 옆 동네 정도 되는 곳에 살고 계신다는 작가님,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가장 의문스러웠다. 난 홍보도 못 하는 서점원인데. 작가님은 동네 근처에 책방이 생겨 기쁘다며 반가워해 주셨고, 원형 테이블에서 구매한 책을 읽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네 좋아요!


그리고 다시 기특한 나, 침착하게 빠르게 생각해 낸다. 작가님의 책에 사인을 받아야 해! 며칠 전 작가님의 책이 판매되어 안타깝게도 ⟪깨끗한 존경⟫ 한 권만이 남아있었다. 급박하지만 여유로운 척 책과 펜을 찾아 들고 사인을 요청했다.

작가님은 정성스레 문장을 남겨주셨다. 흩어진 문장 하나를 수집했다. 이 책을 구입하신 분, 럭키슬아 뭐 이런 거다. 그 후로 나는 작가님의 다른 책을 찾아보고 부지런히 입고하는 중이다.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찰나의 순간이더라도 마음이 한 걸음이라도 더 간다. 심지어 직접 방문까지 해주는 작가라면 더더욱. 작은 서점에 에너지를 나눠주고 가는 느낌이랄까.


혹시라도 서점을 방문할 예정인 작가님들이 계신다면 나의 눈썰미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다. 근데 사실 쑥스러울 수 있다. 내향인인 나는 어렵다. 그럼, 외향인이신 작가님은 당당히 말씀해 주시고, 내향인 작가님들은 우리만의 약속으로 ‘펜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이런 문장을 건네주면 어떨까. 입고된 책에 사인을 해주겠다는 약속 같은 느낌으로. 그럼 내가 알아채고 펜을 빌려드리고 서점에 입고된 책에 사인을 받으면서 하하호호하는 걸로.


사실 손님이든 작가님이든 방문해 주는 것만으로도 서점은 힘이 난다. 서점에 있어야 하는 건 책과 책을 쓴 사람 혹은 읽을 사람이니까.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다만 제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아직 서점원의 눈썰미가 이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길.


2025년 5월 17일 자영업자에겐 다양한 미덕이 필요함을 배우며




서점원의 문장과 책

: 한눈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초능력이 있다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대신 여러 번 보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고 좋은 사이가 되려고 노력한다.


<문장 023> 중에서

⟪태도의 말들: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엄지혜 지음, 도서출판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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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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