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6월
02
언젠가 써놓은 끄적임을 봤는데 그날은 손님이 없었는지 요런 메모도 일기도 아닌 글이 남겨져 있었다.
긴 연휴가 싫다
다들 놀러 감
식물이 아프다
날벌레의 서식지
화분 파묘
동물도 식물도 어렵다
무언가를 보살핀다는 건
그때의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 문장의 조각들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여전히 긴 연휴가 싫고, 다들 휴가를 떠났고, 식물은 다행히 뿌리파리(넘치는 사랑으로 물을 과다하게 줘서 벌레가 생겨버렸다)가 없어져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고, 여전히 뭔가를 보살피는 건 어렵지만.
커다란 위기도 도파민도 없지만 화분 주변에 날아다니는 작디작은 뿌리파리를 발견했다는 건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다. 어느 날 우연히 본 거울 속 얼굴에서 만난 주름, 기미, 뾰루지 같은 것들은 큰 일이 없을 때만 발견된다. 너무 고되면 그런 건 우선순위에 들지 못하고, 멘탈이 터지면 거울 볼 새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화분의 뿌리파리를 뒤늦게라도 발견한 나를 보며 다들 놀러가서 서점엔 손님이 없지만 ‘무탈하구나’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2025년 6월 8일 토요일 식물 살인마에서 식물 반려인이 되고 싶은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그런데 이 부족함이 성장에 또 큰 도움이 된다. 영양이 부족하면 온갖 질병의 근원인 나쁜 균이 살지 못한다. 영양이 부족한 대신 병균도 없이 청결하고, 삶이 가난해도 굳세게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귀가 따끔거린다.
⌜야쿠 삼나무⌟ 중에서
⟪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책사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