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5월
01
인간의 시선이란 정말 묘하다. 내 할 일이 많아 바쁠 땐 다른 걸 둘러볼 여유가 없다. 가족도, 친구도, 세상사도. 코 앞에 닥친 급한 불(tmi 하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꼭 한쪽 손을 펼쳐 코 앞에 가져다 대며 코 앞에 닥친 일이란 것을 강조했다, 그 모습을 본 언니의 후배인 양유는 나를 처음 본 날 내 모습을 보고 마구 웃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내 행동이 웃기는군 이란 생각을 했다)을 끄고 나면 그제야 다른 곳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물론 그건 언제나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이다. 진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란 생각이 들지만, 나의 한계가 그렇다.
서점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날은 바쁨의 연속이었다. 일단 오픈을 하고 미흡한 부분을 채워나가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기에 오전부터 정말 코 앞에 닥친 일이 수 없이 많아 손님이 오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차츰 루틴이 안정화되면서(코 앞에 닥친 일이 줄어들면서와 동일하므로 코 앞에 손을 펼치는 일이 점차 사라지면서) 정오에 서점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사실 정오보다는 그 이후 꽤 오랫동안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5월의 시작과 동시에 길고 긴 연휴가 다가왔고, 옆집 카페 인하프(푸딩 전문점. 푸딩과 커피가 맛있고, 강아지 반이가 귀엽다)에선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원래 한 공간이었던 곳을 둘로 나눴는데 석고보드로 벽을 세워 어느 정도의 대화나 음악 소리를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서점이 엄청 조용하기도 하고. 여대 근처라 여학생들의 방문이 많은 건 알았지만, 그날따라 웃음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고 나의 귓가에 꽂혔다. 부럽다. 카페 사장님 부럽다. 동시에 까르르 학생들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옆집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며 까르르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귀한 손님이 책방을 방문해 주었다. 손님들은 보통 서점에 들러 차분히 책을 고르지만 이곳에 없는 책도 찾았다. 먼저 다가와 책 제목을 말하며 주문할 수 있냐는 물음. 난 그 물음이 좋았다.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기특했고(보통 20대 초반의 대학생이기에 동생 같은 기특함이 느껴진다), 기꺼이 이곳을 다시 방문하겠다는 마음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일지도). 이유를 막론하고 다시 찾아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니. 그 마음이 정말 고마운 거다.
하루 만에 아니, 비용만 지불하면 반나절만으로도 배송이 되는 세상에 작은 동네 서점에서 책을 예약하고 가다니. 밥도, 음료도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배달해 주는 세상에 책이라고 다를 건 없다. 손가락 터치 몇 번만으로 집 앞에 책이 도착한다. 그럼에도 부러 서점을 방문해 손끝으로 책을 고르고 원하는 책이 없을 땐 물어봐 주는 손님이 있다.
이 마음을 나도 표현하고 싶은데 너무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 아껴 놨다가 여기에 몰래 적는다(약간의 할인도 해준다). 하여튼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 그러니 더욱더 책방에 자주 들러 주라는 것.
첫 예약자에 힘입어 바로 당장 책 예약 주문 양식도 만들었다. 조금 많이 어설픈 서점원은 이렇게 손님에게 배워나간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다는 게 너무 클리셰 같은 문구라 몇 번을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다시금 깨닫는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대대로 내려오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다. 앞으로도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난 맞춰줄 준비가 되어있다(물론 꾸안꾸 스타일로 티 안 나게. 티가 안 난다면 성공이니 은은하게 느껴졌다면 노력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길).
혼자 일을 하다 보니 무언가 부족한 것 같고, 분명 더 멋진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고, 텅 빈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렇게 손님 덕분에 아이디어를 얻고, 무언가를 해 나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초조함’이라는 감정의 존재가 이렇게나 쉽게 발현될 수 있다는 게 놀라운 나날이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가뿐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믿기로. 나 역시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기로.
2025년 5월 3일 연휴에 근무하며 글 쓰는 황초조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손을 움직이기 전에 들인 시간에 비례하여 일이 재미있어집니다.
⟪자기만의 일⟫, 니시무라 요시아키 지음, 구수영 옮김, 도서출판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