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4월
01
결혼을 앞둔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이렇게 큰돈을 쓰는 것도 처음인데 이렇게 많은 선택을 하는 것도 처음이야. 그때는 책임 없는 쾌락처럼 너의 손에 쥐어진 돈을 쓰기만 하면 되는 데 힘들게 무어냐 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확신이 없는 결정과 선택은 자괴감을 불러온다는 것.
서점을 준비하며 방지턱을 만난 것처럼 한 번씩 멈칫했던 부분 역시 그러했다. 공간을 찾을 때, 좋은 매물이 나와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과연 이 공간이 좋은 걸까? 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보증금, 이 월세, 이 위치, 이 컨디션 과연 괜찮은가? 결국엔 현실적인 비용의 문제를 떠안고 합리화를 했다는 게 더 가까웠다.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또 다른 산이 등장했다. 사실 높은 산도 아니었고, 이름도 없는 동네 뒷산 정도였지만 그 당시 나에겐 그러했다.
인테리어는 더욱 세심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벽은? 페인트는? 색상은? 바닥은? 종류는? 조명은? 밝기는? 아아악. 이곳에서 나는 괴로워했다. 괴로웠던 와중 확신했던 한 가지는 내가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면 혹은 좋아했다면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나는 인테리어를 모른다. 감각이란 것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페인트의 색이 벽에 입혀졌을 때 어떤 질감을 내뿜을 것일지 알아차리는 건 직접 해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페인트 사장님이 샘플로 칠해진 공간을 보여주며 자, 이건 자연광일 때 느낌이에요 라고 말하고, 조명을 켠 후에는 이건 조명을 받을 때 느낌이에요. 완전히 다르죠? 라고 말했을 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색상을 결정했다. 서점 벽면에 색을 두 번 덧바른 후에야 조명을 껐을 때와 켰을 때 그리고 자연광일 때와 아닐 때의 차이를 인지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아간다.
바닥 공사는 나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전의 공간은 꽃집 자리였는데 화사한 꽃들이 많아서인지 방문할 때마다 바닥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가구와 바닥 색상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며 새 가구가 들어오면 더욱 거슬리게 될 것이라 조언해 주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고 인테리어는 확신이 없는 분야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결국 또 하나의 선택지가 늘었다. 바닥이 나뭇결일 때, 대리석일 때 어떤 느낌일지 감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바닥은 벽만큼이나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결정을 온전히 나의 손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면 그것 또한 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스트레스의 주축이었다. 큰돈을 투자했는데 실패라니, 그런 건 누구도 원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괴로웠다. 나의 선택을 믿지 못하는 불확실의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 것이다.
추구미는 완벽주의자이지만, 도달미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어딘가 조금 부족한 나는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결정도 빨리 못하면서 빨리 결정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괴로울 수밖에. 그럼에도 이 지난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니 잠시 쉴 곳이 생겼다.
책을 사자.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상관없이 그 자체가 즐거운 행위다. 확신이 없어도 조금의 매력만 보여주면 기꺼이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마구마구 살 수 있다. 서점엔 책이 아주 많아야 하니까. 이렇게 확신에 가득찬 선택만 가득하다면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기쁨이 잘 안 보이면 애를 써야 한다. 기꺼이 품을 들여야 한다.'
나는 이 호사스러움을 조금 더 누리기 위해 기꺼이 애를 써 보기로 한다. 책을 팔아서 책을 산다. 정성껏 품을 들여 책을 고르고 선보이고, 다시 책을 구입하는 그 기쁨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2025년 4월 7일 괴로운 선택의 한복판에서
�서점원의 문장과 책
: 벌어진 일과 벌어지지 않은 일을 비교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리라.
⟪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 원당희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