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9월
03
대학 축제 둘째 날.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손님은 없다. 그렇다. 자고로 축젯날은 그리고 잔칫날은 차분히 책을 읽을 수 없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모두가 방방 뛰어야 하는 날이니까.
서점에 손님이 오지 않아 내가 직접 가기로 한다. 축제를 보러.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을 마주하러. 아마도 서점을 오픈하고 맞이하는 첫 번째 조기 퇴근일 것이다. 오후 여섯 시, 가뿐하게 문을 닫는다. 뭔가 합법적으로 문을 일찍 닫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가 않다.
이 동네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태조 감자탕을 저녁으로 먹고 학교로 향한다. 사실 축제 구경이라 했지만, 캠퍼스 구경이 더 정확하다. 아직 이곳의 캠퍼스를 둘러본 적이 없다. 오픈 초창기엔 바빠서, 그리고 한 달 전만 해도 너무도 더워서 학교를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 내리는 9월의 캠퍼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학생들로 가득한 캠퍼스를 마주한다. 언덕을 오르고 아기자기한 잔디밭 저 멀리 무대가 보인다. 학생들은 모두 비옷을 입고 모여있다. 아직 이렇다고 할 공연은 없지만, 그냥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학생들은 즐거워 보인다. 다른 건물 쪽으로 쭉 돌다 보니 푸드트럭이 나오고, 인생네컷 부스가 나오고, 계단이 나오고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건물 뒤쪽에 있는 또 다른 잔디밭에선 도예과 학생들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접시, 컵, 화병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옆 건물 안쪽엔 미대 학생들이 무언갈 만들고 있다. 서점 단골 중에 미대생이 있는데 야작을 하느라 항상 매우 지쳐있다. 도피하는 수단으로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그 학생이 생각나 짠함이 밀려온다.
정문 앞으로 오자 학교를 소개하는 짧은 글이 있다. 이곳은 수정 캠퍼스인데 함께 간 조카 1호에 의하면 대학 부지에서 진짜 수정(크리스털)이 나와 수정 캠퍼스가 되었다고. 수정이 나온 것도 신기했지만, 조카 1호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묻자, 어디선가 봤다는 말만 남기고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는다. 동네 주민의 기본 상식 같은 걸까. 덕분에 재미난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축제의 분위기만 만끽하고 조금 추워진 몸을 식히러 근처 카페로 가서 핫초코 한 잔씩을 마신다. 그제야 저 멀리서 신나는 음악 소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
아쉬움은 없다. 나는 왠지 모르게 축제의 한복판보다 시작하기 직전의 분위기가 더 좋다. 여행을 떠날 때도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설레고, 소설을 읽을 때도 도입부를 읽을 때 가장 의욕적이다.
비 오는 금요일 저녁, 마냥 신나는 학생들의 모습을 옆에서 본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들은 신날 테고, 재미나겠다는 생각. 머릿속에 그려지는 분위기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서점은 고요하고, 축제는 화려하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언젠가는 서점도 화려해질 수 있겠지.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역시 노는 게 제일 좋은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하지만 그 기다림 역시 언젠가는 끝난다는 걸 안다. 오늘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며 내일의 기쁨을 이백 번쯤 찔러보는 사이에.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하현 지음, 비에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