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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소개팅하듯 독서 모임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9월

02


9월에 이르렀다.

서점원은 서점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클럽 <무엇이든 쓰는 밤> 이후 두 번째 소모임 격인 독서 모임 <산문집 북클럽>을 야심 차게 선보인다. 무릇 서점이라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나 첫 모임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첫 북클럽 신청자는 단 한 분, J 님(시작도 못 하고 끝나버릴 뻔한 서점원의 독서 모임,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색이 독서 모임인데 참여자가 서점원 외 한 명이라 과연 독서 모임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J 님께 솔직하게 문자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J 님.

그동안 책은 잘 읽으셨나요? 내일 드디어 북클럽 첫날이네요!

시작에 앞서 한 가지 이야기해 드릴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홍보를 잘 해내지 못해 첫 번째 북클럽은 J 님과 저의 도란도란 독서 모임이 되겠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도 좋았겠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더 세심하게 들어볼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저는 테이블을 잘 정리해 놓을게요,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럼, 저희는 내일 만나요�


J 님은 다행히도 부끄럽지만, 흔쾌히 참석해 주기로 답을 주셨다. 그렇게 서점원의 첫 독서 모임은 오손도손 도란도란 정다운 독서모임이 되었다(사람 모으는 게 이렇게 어렵단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일요일 아침, 아직 여름의 더위가 가시지 않아 걸으면 땀이 맺히는 날씨가 이어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J 님!

J 님은 희곡을 쓰는 극작가다. 글 쓰는 사람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라니, 서점원은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업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의 북클럽은 한 달에 두 번, 한 가지 주제 혹은 비슷한 결을 가진 책 두 권을 선정해 격주 일요일 아침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9월의 주제는 [결혼]으로 1회차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2회차는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만난다.

두 권을 선택한 이유는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다루는 시대와 장소(19세기 영국과 20세기 한국)는 다르지만 결혼을 대하는 태도는 어딘가 묘하게 닮아있어 북클럽 책으로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특히 <오만과 편견>은 정말 예전에 읽고(심지어 완독하지도 않았다) 덮어둔 고전인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예상치 못하게 재밌어서 깜짝 놀랐다. 영화로 접해서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책 속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자기주장을 펼쳐서 흥미로웠다.


발제를 준비하긴 했지만, J 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준비한 질문 외에도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둘이서 하는 독서 모임이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정말 신선한 일이었다!


내 생각과 J 님의 생각이 겹칠 때 그리고 정반대의 길을 향할 때 두 가지 모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다를 수도 있고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독서 모임을 하는 이유를 마냥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내가 찾아내면 그것이 이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애 캐릭터를 선택하는 순간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J 님은 많은 고민 끝에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여인 리디아를 선택했다. 사랑을 위해 어떤 선택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을 때 이 정도의 사랑은 인정해 주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는 애증의 마음으로 콜린스 씨를 선택했다. 강력한 후보 중 하나였던 베넷 부인의 호들갑이 없이는 <오만과 편견>의 대사가 허전할 정도였지만, 콜린스 씨에 비하면 압도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눈치코치가 없는 인간으로 여겼는데 캐릭터가 일관성 있게 눈치코치가 없으니까, 중간엔 안쓰럽기도 하고 나중엔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콜린스 씨의 매력에 빠져버린 건가 싶을 정도로 당혹스럽지만, 여하튼 최애는 맞다(애정과 비례해 증오도 그만큼 크지만).

그렇게 한 시간 반의 소중한 시간 동안 <오만과 편견>에 듬뿍 빠질 수 있었다. 독서 모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발견, 즐겁다.


2회차 책인 <모순>을 앞두고 J 님에게 교환독서를 제안했다. 시간이 될 때 서점에 들러 책을 읽고 코멘트를 적어 놓는 것이다. 그럼 나중에 동일한 책을 내가 읽고 그 밑에 또 코멘트를 달고 이런 식으로. 어릴 적 교환일기처럼 교환독서!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은 피드백해야 하니까 독서 모임 신청자가 저조한 이유를 살펴본다.

책을 읽고(숙제처럼 여겨지는가?) 일요일 아침(너무 이른 시간인가?)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문제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콘텐츠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독서 모임이 매력적인가.

또 생각이 깊어진다. 고민의 연속이다.


*독서 모임 느낀 점: 오랜만에 ‘책’이라는 매개체로 누군가(심지어 처음 만난)와 대화를 나눈 것, 굉장히 매력적이다.



2025년 9월 14일 일요일

아침 열 시에 책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머리가 아픈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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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원의 문장과 책

: “정말, 콜린스 씨.” 엘리자베스가 다소 흥분하며 소리쳤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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