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글쓰기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까지
“책 좋아하세요?”
누가 이렇게 물으면 잠시 망설인다.
솔직히, 나는 책과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책을 좋아하는 엄마이고 싶었다.
내가 보여주지 못한 더 넓은 세상을
책을 통해 경험하길 바랐고,
깊고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랐다.
우리는 함께 책을 읽었다.
거실에 모여 각자 책을 읽고, 때로는 같은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문장을 나누기도 했다.
평일엔 도서관에 가고, 주말엔 서점에 들렀다.
아이들은 책을 고르고,
나는 그 옆에서 다시 책을 배워갔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옆에 앉아 일기를 쓰고,
독서 활동지를 함께 채우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자신감이 생기자 독서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책을 이야기하며
서로 다른 시선으로 같은 문장을 읽는 일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초등 시절부터 함께했던 그 시간은
형태는 달라졌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은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쓴 감상평을
아이패드에 담아 내게 보여줬다.
“엄마, 내가 쓴 글 좀 볼래?”
툭 던지듯 말하지만, 은근히 기대가 차있는 눈빛이다.
내게 감상을 들려달라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어린 시절,
나란히 앉아 한 줄씩 써 내려가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아이가 먼저 글을 쓰고, 나의 생각을 나눈다.
서툴지만 진지한 표현이 기특했다.
둘째 아들도 학교에서 하는 독서 활동에 늘 진심이다.
과제가 아니라, 스스로 느낀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요즘은 글쓰기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인데,
학교 교지에 아이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이 있었구나—
놀랍고, 한편으론 뿌듯했다.
함께해 온 시간들이
아이 안에서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은 아이들뿐 아니라
나를 키워낸 시간이기도 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관심과 적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글쓰기라는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듯,
나도 집에 있던 소설을 꺼내 읽으며,
짧은 감상을 공책에 적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정리해
아이패드로 옮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연필만 쓰던 아날로그 엄마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 몰래 혼자 타자 연습부터 시작했다.
스마트폰만 겨우 다루던 나는
커다란 키보드 앞에서 몇 번이나 손을 놓고 싶어졌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며 하나하나 글을 완성해 갔다.
그리고 다행히도, 브런치 작가에 합격이 되었다.
아이의 세계를 넓혀주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여정에서 가장 많이 자란 사람은 나였다.
아들의 책상 옆에서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이제 우리 가족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관심사가 되었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또 하나의 대화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읽고 쓰며 자라온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